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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조【宋朝】송조는 춘추시대 때 미남으로 이름난 송 나라 공자 조(公子朝)인데, 위(衛)나라에 벼슬하여 대부(大夫)를 지내면서 위 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인 남자(南子)와 간통하였다. 송주【送酒】도연명(陶淵明)이 중양절(重陽節)에 마실 술도 없이 무료한 가운데 국화꽃을 따며 시름을 달래고 있을 때, 자사(刺史)인 왕홍(王弘)이 백의사자(白衣使者)를 보내 술을 전달케 했던 고사가 전한다. 《續晉陽秋》 송죽지절【松竹之節】소나무, 대나무와 같이 변하지 않는 절개. 송창계【宋窓鷄】진(晉) 나라 때 연주자사(兗州刺史) 송처종(宋處宗)이 일찍이 닭 한 마리를 사다가 매우 사랑하여 길렀다. 닭장을 창 앞에 놓아두었더니 한번은 닭이 사람의 말을 하므로 송처종이 그와 함께 종일토록 현어(玄語)를 담론하였던 바, 이로 말미암아 그는 현도(玄道)에 크게 통했다고 한다. 송천【松川】양응정(梁應井)의 호로서 자는 공섭(公燮). 송추【松楸】소나무와 가래나무로, 이를 묘역(墓域)에 많이 심는다 하여 선대 무덤의 별칭으로 쓰인다. 송추만목배근원【松楸滿目培根遠】높은 덕을 쌓은 선조(先祖)들의 후광을 듬뿍 받고 뿌리가 굳건하게 자라나리라는 말이다. 송추(松楸)는 선영(先塋)의 나무들을 말한다. 송추비구【誦箒比丘】석가여래의 제자에 주리반특가(周利盤特迦)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가 매우 둔하여 잊기를 잘하였다. 한번은 여래가 그에게 모든 것을 잊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자루로 쓸어버리라’라는 말을 가르쳐주고 이것을 외게 하였으나 그는 빗자루가 생각나면 뒷부분인 쓸어버리라는 말이 잊혀지고, 뒷부분이 생각나면 다시 앞부분이 잊혀졌다. 이 때문에 송추 비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부처는 하도 딱하여 다시 그에게 안거(安居)를 가르쳐 선(禪) 공부를 시켰더니, 그는 마침내 도(道)를 통하여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 한다. 《楞嚴經 卷五》 송파【松坡】송파는 조선 명종 때 문신 이중계(李重繼)의 호. 자는 술부(述夫). 광해군 때 호조 정랑(戶曹正郞)으로 춘추관 기주관(春秋舘記注官)을 겸임하였고,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서궁에 유폐되자 이를 탄핵하다 삭탈 관직을 당했다. 선조실록(宣朝實錄) 편찬에 참여했음. 송풍입정【松風入鼎】차를 끓이는 법에 끓는 소리가 솔바람[松風]처럼 세게 하라는 말이 있다. 송한갈도【松閒喝道】갈도는 귀인이 출입할 때에 사람 비키라고 벽제(辟除)하는 호령이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이 몇 가지 살풍경(殺風景)을 말한 한 가지에 송간갈도(松間喝道)가 들었다. 송현우상설【松縣憂霜雪】송백(松柏)은 원래 서리와 눈에도 끄덕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걱정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송화【頌花】신년 축사(新年祝詞)를 뜻함. 유진(劉臻)의 아내 진씨(陳氏)가 총명하고 글을 잘 지었는데, 일찍이 정월 초하룻날에 초화송(椒花頌)을 지어 올린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列女傳》 송화양【宋華陽】송시열(宋時烈)을 말한다. 송시열이 충북 괴산(槐山)의 화양동(華陽洞)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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