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정【壽亭】관우(關羽). 한수정후(漢壽亭侯) 봉호를 받았음. 수정【修靜】육조(六朝) 때 송(宋) 나라 육견적(陸見寂)의 이름. 수정교【水精橋】얼음은 수정과 비슷하기 때문에 얼음이 많이 얼어붙어 다리처럼 생겼음을 말한 것이다. 수정궁궐【水晶宮闕】전설 속에 나오는 궁궐로, 달에 있는 궁궐을 가리키기도 하고, 물속에 있다고 하는 용궁(龍宮)을 가리키기도 한다. 수정배【水精杯】수정(水晶)으로 만든 술잔. 수정(水精)은 곧 수정(水晶)이다. 수정인【水晶人】새우와 게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 수정처럼 투명하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수정포도【水晶葡萄】열매가 수정처럼 하얀 포도를 말한다. 수제【水帝】물의 신인 전욱(顓頊)으로, 전욱이 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었으며, 죽은 뒤에는 북방 수제가 되었다고 한다. 수제【隋隄】수 양제(隋煬帝)가 제수(濟水)와 하수(河水)의 지류(支流)를 소통시키기 위하여 양주(揚州)에 쌓은 둑[隄]을 말하는데, 거기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어 놓아 경치가 좋다. 수제심지편망기【修諸心地便忘機】심지(心地)는 곧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기를 잊었다[忘機]는 말은 즉 마음에 꾸밈이 없이 담담한 것을 말한다. 당(唐) 나라 사공도(司空圖)의 시에 “말이 망기에 이르니 불심에 가깝도다.[語到忘機近佛心]" 라는 구절이 있다. 수제양류【隋堤楊柳】수 양제(隋煬帝)가 운하(運河)를 파고 운하에 따라 쌓은 둑에 버들을 줄지어 심었었다. “수제의 버들이 빛을 잃었다.”함은 당 태종의 위력에 수(隋)가 패망했음을 뜻한다. 수제하상당금포【手製荷裳當錦袍】은자의 소박한 복장이 마치 임금에게 하사받은 옷처럼 멋지기만 하다는 말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마름과 연잎으로 윗옷 만들고, 부용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는다.[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라는 표현이 있으며, 이태백(李太白)이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금포(錦袍)를 입고서 배 안에서 술을 마시며 방약무인(傍若無人)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202 文藝列傳中 李白》 수조【水調】상조(商調)의 슬프고 애절한 곡조 이름. 수조【水曹】수부(水部)와 같은 말로서 공부(工部)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수부랑(水部郞) 중에 원외랑(員外郞) 각 한 사람씩 두었는데, 두보는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을 지냈다. 수조【受祖】수조는 임금 자리를 종묘(宗廟)에서 선위받는다는 뜻이다. 수조가【水調歌】악부(樂府) 상조곡(商調曲)의 이름. 수 양제(隋煬帝)가 변거(汴渠)를 개통한 뒤에 스스로 지어 불렀다는 노래로, 애절한 뜻이 담긴 것이라 한다. 수 양제(隋煬帝)가 강도(江都)에 갔을 때 처음 지은 것을 그 뒤 당(唐) 나라 때 신수조(新水調)로 발전시켰다고 하는데, 그 곡이 은근하면서도 애절한 음조를 띠고 있다 한다. 《碧鷄漫志 歌曲》 수조가두【水調歌頭】수조가두는 사패(詞牌)의 이름이다. 95자로 짜여져 있음. 《詞律 卷十四》 수조랑【水曹郞】수조랑은 상서수부랑(尙書水部郞)을 이르는 것으로, 소식(蘇軾)의 초도황주시(初到黃州詩)에 “쫓겨난 사람은 원외랑에 비치됨도 무방하지만 시인은 으레 모두 수조랑이 되었다오[逐客不妨員外置 詩人例作水曹郞]” 한 데서 온 말인데, 예를 들면 뛰어난 시인으로 양(梁) 나라 하손(何遜)이나 당(唐) 나라 장적(張籍) 등이 모두 수조랑을 지냈기 때문에 한 말이다. 《蘇東坡集 卷二十》 수족지애【手足之愛】형제 사이의 우애를 일컫는 말. 수종사【水鐘寺】수종사는 양주군(楊州郡) 와부면(瓦阜面)의 조곡산(早谷山)에 있는 절 이름이다. 수좌【首座】선종(禪宗)의 승당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중. 제일좌(第一座)ㆍ좌원(座元)ㆍ선두(禪頭)ㆍ수중(首衆)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원(禪院)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수좌라 한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20/30/40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