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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時雨】철 따라 알맞게 오는 비 시우산【施愚山】우산은 청 나라 때의 학자인 시윤장(施閏章)의 호. 시우아【狋吽牙】한 무제(漢武帝) 때 곽사인(郭舍人)이 동방삭(東方朔)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시우아(狋吽牙)는 뭐냐?" 며 알아맞히라고 하자, 동방삭은 “시우아는 개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이다.” 하여 대번에 알아맞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六十五》 시원【始元】한 소제(漢昭帝)의 연호. 시위【尸位】송장처럼 일은 못하고 자리만 지키는 것을 시위(尸位)라 한다. 시위소찬【尸位素餐】시동의 공짜밥. 능력이나 공적도 없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한갓 관직만 차지하고 녹을 받아먹는 일, 또는 그런 사람. 시위시각충언험【時危始覺忠言驗】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선조 24년(1591) 일본에서 사신이 오자, 조헌이 옥천(沃川)에서 상경하여 일본 사신의 처단을 상소하고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방력의 강화를 주장했던 것을 말한다. 《海東名臣錄》 시유부비흥【詩有賦比興】서경(書經)은 시의 체재(體裁)와 서술방식(敍述方式)을 가지고 부(賦), 비(比), 흥(興)으로 구분하고 있다. 부는 어떤 일을 그대로 서술하여 말하는 것이고, 비란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이고, 흥은 먼저 다른 사물을 말하여 읊을 말을 일으키는 것이다. 시율가능생난열【詩律可能生暖熱】연(燕) 나라 한곡(寒谷)의 토지는 비옥한데 기후가 한랭하자, 추연(鄒衍)이 율관(律管)을 불어 제쳐 따뜻한 기운이 감돌게 하였으므로, 그곳을 서곡(黍谷)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論衡 寒溫篇》 시의별【施衣別】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중 태전(太顚)과 작별할 때 의복을 시주했던 고사를 인용한 말. 시자【尸子】전국 시대 초(楚) 나라 시교(尸佼)가 찬한 책. 본래는 20여 편이었으나 산일되고 지금은 후인의 집본(輯本) 2권이 전함. 시자추정득【詩自趨庭得】공자의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뜨락을 지날 때에[趨庭] 공자가 시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論語 季氏》 시전【詩牋】시를 쓴 종이를 말한다. 시전초성【詩顚草聖】시전(詩顚)은 시에 미쳤단 말이요, 초성(草聖)은 초서를 잘 쓴다는 말이다. 시점노두고【詩霑老杜膏】노두는 두보(杜甫)를 존칭한 것으로서, 두보처럼 시를 잘하는 것을 말한다. 문슬신화(捫蝨新話)에 “노두의 시는 동중서(董仲舒)의 책(策)처럼 글귀마다 전아(典雅)하다.” 하였다. 시제【柴帝】오대(五代) 시대 주 세종(周世宗) 시영(柴榮)을 이르는데, 그는 문무를 겸비한 영주(英主)로서 특히 유학(儒學)과 문장(文章)에 뛰어난 선비들을 맞이하여 제도(制度)를 고찰하고 예악(禮樂)을 바로잡는 등 후세에 본받을 만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五代史 卷十二》 시제시【詩題柿】당 나라 때 정건(鄭虔)이 시(詩), 서(書), 화(畫)에 뛰어나서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일찍이 글씨를 연습할 종이가 부족한 것을 걱정하고 있던 차에 자은사(慈恩寺)에 감잎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그 절에 가서 묵으면서 감잎에다가 글씨를 연습하였다. 《新唐書 卷202 文藝列傳中 鄭虔》 시종여일【始終如一】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이 한결 같음. 시종일관【始終一貫】처음이나 나중이 한결 같아서 변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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