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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각반룡【雙角盤龍】송 나라 때에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茶]를 용의 형상으로 뭉쳐서 만들었다. 쌍감두주【雙柑斗酒】두 밀감과 한 말 술을 이름. 운선잡기(雲仙雜記)에 “戴顒春日携雙柑斗酒 人問何之曰 往聽黃鸝聲" 이라 하였음. 쌍검곡【雙劍曲】만가(挽歌)를 이름. 쌍검은 바로 춘추 시대에 간장(干將)ㆍ막야(莫邪) 부부(夫婦)가 만들었던 자웅(雌雄) 이검(二劍)을 이르는데, 그 칼이 일찍이 서로 떨어져 있다가 수천 년 뒤에 다시 서로 만나서 용(龍)으로 변화하여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부부가 다 죽어 합장한 것을 뜻한다. 쌍검합【雙劍合】고향 땅에 부부가 합장(合葬)된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연평진(延平津)에서 다시 만나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물 속으로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張華傳》 쌍검합【雙劍合】진나라 장화(張華)가 뇌환(雷煥)을 시켜 풍성(豐城)의 옥터[獄基]를 파서 보검(寶劍)한 쌍을 얻었는데, 하나는 장화가 가지고 하나는 뇌환이 가졌었다. 장화가 화(禍)를 당하여 죽은 뒤에 칼이 어디 간지를 몰랐다. 뇌환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 그 칼을 차고 연평진(延平津)을 건너가다 칼이 문득 칼집에서 빠져 나와서 강물 속에 뛰어 들어갔다. 잠수부(潛水夫)를 시켜 물속에 들어가 보니 두 용[雙龍]이 서리어 있었다. 뇌환의 아들이 말하기를, “전일에 선공(先公)이 이 칼은 신물(神物)이므로 반드시 끝에 가서는 서로 합쳐질 것이라 하더니, 과연 오늘에 두 칼이 서로 합친 것이다.” 하였다. 쌍검회중연【雙劍會重淵】춘추 시대 오(吳) 나라의 장인(匠人)인 간장(干將)ㆍ막야(莫邪) 부부가 명검(名劍) 두 자루를 만들어 웅검(雄劍)을 간장, 자검(雌劍)을 막야라 하였는데, 진(晉) 나라 때에 와서 장화(張華)와 뇌환(雷煥) 두 천문가(天文家)가 천문(天文)을 인하여 이 쌍검(雙劍)을 풍성현(豐城縣)에서 발굴한 다음 둘이 한 자루씩을 나누어 가졌던바, 그들이 죽은 뒤에는 결국 그 쌍검이 연평진(延平津)의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쌍룡(雙龍)으로 변화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晋書 卷三十六》 쌍궐【雙闕】옛날 궁전, 사묘(祠廟), 능묘(陵墓) 등의 앞 양쪽 높은 대 위에 세웠던 누관(樓觀). 쌍궐풍운【雙闕風雲】예측 불허의 상황에 처해 있는 도성의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다. 쌍궐(雙闕)은 경도(京都), 풍운(風雲)은 변화무쌍한 국세(局勢)를 가리킨다. 쌍극【雙屐】남조 송(南朝宋)의 사영운(謝靈運)이 명산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면서 산에 오를 때는 나막신의 앞굽을 떼어 내고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떼어냈던 고사가 있다. 《南史 謝靈運傳》 쌍금【雙金】쌍남금(雙南金)의 준말로, 보통의 금보다 두 배의 가치가 나가는 남쪽 지방의 금을 말한다. 쌍기【雙冀】후주(後周)에서 무승군 절도순관(武勝軍節度巡官)으로 있다가, 고려 광종(光宗) 7년(956)에 후주의 사신 설문우(薛文遇)를 따라왔다가 귀화한 사람. 광종 9년에 당(唐)의 관리 임용 제도를 창설하게 하고 여러 번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과거의 시작이다. 쌍남【雙南】쌍남금(雙南金)을 말함. 두보의 시에 “袞職曾無一字補 許身愧比雙南金" 의 글귀가 있음. 쌍남금【雙南金】두 배의 가치가 나가는 황금(黃金)을 말한다. 장재(張載)의 의사수시(擬四愁詩)에 “가인이 나에게 녹기금을 끼쳐 주었으니 어찌하면 쌍남금으로 그에 보답할거나[佳人遺我綠綺琴 何以報之雙南金]”하였는 바, 그 주석에 의하면 남금을 충의(忠義)에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다. 쌍남금【雙南金】품질이 좋은 황금. 증답하는 시문(詩文)을 뜻한다. 쌍대【雙對】사율(四律)의 중간 두 연구(聯句)를 말함. 쌍동【雙銅】이교(李嶠)의 하설표(賀雪表)에 말하기를, “쌍동(雙銅)의 조화로운 음악이 눈 앞의 일이요, 먼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쌍룡검【雙龍劍】쌍룡검은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다. 진(晉) 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명검을 얻어 하나는 자기가 차고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그 뒤에 장화가 복주(伏誅)되면서 그 칼도 없어졌다. 그런데 뇌환의 칼을 아들이 차고 다니다가 복건성(福建省) 연평진(延平津)에 이르렀을 때, 차고 있던 칼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없어졌던 장화의 칼과 합하여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張華傳》 쌍룡기【雙龍氣】나중에 두 마리의 용으로 변했다는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보검의 기운이라는 뜻이다. 《晉書 張華傳》 쌍륙몽【雙陸夢】쌍륙은 장기의 일종으로 쌍륙(雙六)이라고도 한다. 신당서(新唐書) 적인걸전(狄仁傑傳)에 “한번은 무후가 적인걸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요즘 자주 꿈에 쌍륙을 두어 지는데, 어떠한가?’ 하고 묻자, 인걸은 함께 자리에 있던 왕방경(王方慶)과 동시에 대답하기를 ‘쌍륙을 두어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들이 없을 조짐이니 하늘이 폐하를 경계하는 뜻인가 합니다.’ 하여 중종(中宗)을 복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였다. 쌍리【雙鯉】편지를 말한다. 잉어는 기러기와 함께 소식을 전하는 방편으로 여겨져 왔다.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손이 멀리서 와, 나에게 잉어 두 마리를 주었네. 아이 시켜 잉어를 삶으라 했더니, 뱃속에서 척서가 나왔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 하였다. 쌍리어【雙鯉魚】한쌍 잉어는 중국의 옛 악부(樂府)에 “나그네가 멀리서 찾아들어와 나에게 한쌍 잉어 주고 가기에 아이 불러 잉어를 삶게 했더니 뱃속에는 한 자의 비단의 편지[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서찰을 뜻한다. 한(漢) 나라 때 풍속에는 서찰을 보낼 때 비단폭에다 내용을 적어 그것을 두 마리 물고기 모양으로 접어 보냈다고 한다. 쌍림【雙林】석가모니가 열반(涅槃)한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으로, 보통 사찰의 별칭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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