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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禊事】옛 풍속에, 3월 3일에 물가에 가서 목욕하여 불상(不祥)한 것을 제거하는 것을 불계(祓禊)라 하였다. 계산【稽山】영동(永同)의 고호이다. 계산공견화【溪山空見畫】직접 산수를 찾아가지 못하고 그림을 통해서나 볼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의 시에 “자네도 늙어 가며 부질없이 산수를 그림 속에서 찾고 있네만, 나도 그저 꿈속에서나 한번씩 놀고 온다네.[老去君空見畫夢中我亦曾遊]”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3 次韻子由書王晉卿畫山水二首》 계산이백주【溪山移白晝】남곤의 정원에 있는 시내와 산이 손들의 차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계상【係桑】반석처럼 견고함을 뜻함. 주역(周易) 비괘(否卦) 구오(九五)에 “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만 포상에 매놓은 듯 견고하리라.[其亡其亡 繫于苞桑]”하였는데, 포상은 곧 떨기로 난 뽕나무를 말한다. 계상주【桂餳酒】계수나무의 꽃과 누룩으로 빚은 술로 맛좋은 술을 말한다. 계서【雞書】계모문서(雞毛文書)의 약어로, 급히 전달해야 하는 서신(書信)에다 닭의 깃을 꽂아서 보냄으로써 신속하게 전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이것을 우격(羽檄)이라고도 한다. 《後漢書 卷一 光武帝紀》 계서【鷄黍】논어(論語) 미자(微子)에, “하조장인(荷蓧丈人)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는 내용이 있다. 계석인위양【溪石認爲羊】황초평(皇初平)이 나이 15세 때 양(羊)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도사(道士)가 그의 양근(良謹)한 태도를 보고 그를 데리고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으로 들어갔다. 초평은 그곳에서 40여 년을 보내면서 집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를 찾아나선 그의 형이 몇 해를 두고도 못 찾다가 어느 날 시장에서 도사를 만나 그가 금화산 속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길로 도사를 따라가서 그를 만났다. 형이 초평에게,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 산 동편에 있다고 하여, 가 보았으나 양은 없고 하얀 돌무더기뿐이었다. 그런데 초평이 와서 꾸짖자 그 돌들이 모두 일어나 수만 마리의 양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神仙傳》 계설【繫絏】얽어맴. 계설향【雞舌香】계설향은 향명(香名)인데, 한(漢) 나라 때에 상서랑들이 계설향을 입에 머금고 임금 앞에 엎드려 일을 아뢰었다 한다. 《漢官儀》 보통 정향(丁香)이라고 한다. 계설향【鷄舌香】향명(香名). 초학기(初學記) 직관부(職官賦)에 “상서랑(尙書郞)은 계설향을 머금고 엎드려 일을 아뢴다.” 하였다. 계손유진이뇌면【季孫留晉以賂免】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3년 조(條)에, “진 나라 사람이 계손여의(季孫如意)를 체포하여 천막 안에 가두고 적인(狄人)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는데, 사탁석(謝鐸射)이 비단을 품 안에 품고 물과 얼음을 가지고 기어서 들어가자 지키는 자가 못 들어가게 막았다. 그러자 지키는 자에게 비단을 주고 들어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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