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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잠【高岑】성당(盛唐) 시대의 시인이었던 고적(高適)과 잠삼(岑參)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고장【藁葬】고장은 선영(先塋)으로 가지 않고 임시로 다른 곳에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고장【孤掌】한 무제(漢武帝) 때 감로(甘露)를 받기 위해 세웠다는 선인장(仙人掌) 즉 승로반(承露盤)의 별칭이다. 고장강【顧長康】동진(東晉) 때 박학(博學)하고 재기(才氣)가 뛰어났던 문인화가(文人畫家)인 고개지(顧愷之)를 말함. 장강은 그의 자이다. 고장군【故將軍】벼슬을 아주 그만두었음을 비유한 말. 옛 장군은 한(漢) 나라의 장군 이광(李廣)을 이름. 이광이 일찍이 파직되고 나서 시골에 있을 적에 기병(騎兵) 하나만을 데리고 나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패릉정(霸陵亭)에 이르렀을 때 패릉위(霸陵尉)가 술에 취해 이광의 행차를 막자, 그 기병이 옛 이 장군(李將軍)이라고 말했던 데서 온 말인데, 이광은 그 후 다시 벼슬에 등용되었다. 《史記 李將軍傳》 고장난명【孤掌難鳴】한쪽 손바닥으로는 소리내기가 어려움. 혼자 힘으로는 일을 하기가 어려움. 또는 상대 없는 싸움이 없음 고재【沽哉】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을 상자 속에 그냥 보관해 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가 “팔아야지, 팔아야 되고 말고. 나 역시 제값을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論語 子罕》 고저부위【固儲副位】고조(高祖)가 말년에 척부인(戚夫人)에게 혹하여 여후(呂后)의 아들인 태자를 폐하려 하매 여후가 장량에게 꾀를 물어서 상산(商山)에 숨어 있는 이름 높은 사호(四皓)라는 네 노인을 불러다가 태자를 보좌하게 하니 고조(高祖)는, “태자는 벌써 날개가 생겼다.” 하고 폐하지 아니하였다. 고적【高適】당 현종(唐玄宗) 때 사람으로 자는 달부(達夫).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냈음. 그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시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아주 시에 능하였음. 저서로는 고상시집(高常詩集)이 있음. 《唐書 卷一百四十三 高適傳》 고정【鼓庭】고려 태조가 천안에 왕자성(王字城)을 쌓고 10만의 군사를 주둔시켜 마침내 견훤(甄萱)을 항복시켰는데, 바로 그 진영(陣營)을 둔 곳이 고정이라고 한다. 고정【古井】마음이 마치 물 없는 우물에 파도가 일지 않는 것처럼 조용함을 비유함. 고정【考亭】송(宋)의 주희(朱熹)를 말함. 고정은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에 있는 지명인데, 주희가 만년에 거했던 곳으로, 고정서원(考亭書院)의 사액(賜額)을 받으면서 그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주희가 그곳에다 창주 정사(滄洲精舍)를 짓고 그곳에서 기거하자 많은 제자들이 그리로 모여들어 세상에서 그들을 일러 고정학파(考亭學派)라고 하였음. 《福建通志》 고종용영【高宗用說】은(殷) 나라 고종(高宗)이 현신(賢臣) 부열(傅說)을 얻고 나서 “만약 가뭄이 들면 너를 써서 큰비가 내리게 하리라.” 하였다는 고사(書經). 고주【孤注】도박하면서 가지고 있는 판돈을 전부 거는 것을 말한다. 고주【羔酒】양고기와 술을 말하는데, 고주(羔酒)로 전가(田家)의 낙(樂)을 삼는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고주시【孤舟詩】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유명한 시에 “친지와 벗들은 한 자의 소식 없고, 늙고 병든 몸 외로운 배 타고 가네.[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라는 구절이 있다. 고주일척【孤注一擲】노름꾼이 노름에 계속하여 잃을 때 최후에 나머지 돈을 다 걸고 모험을 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전력을 기울여 어떤 일을 모험하는 것을 비유함.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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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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