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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白頭】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에 “상말에 ‘머리가 세도록 오래 사귀어도 초면과 같기도 하고 잠깐 길거리에서 만난 사이라도 구면과 같다.[白頭如新 傾盖如故]’ 하였다.” 하였다. 백두신【白頭新】백발이 되도록 오랫동안 서로 사귀었으나 서로 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백두여신【白頭如新】머리가 희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사귀어도 서로 마음이 안통하고 상대방의 재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 사귄 벗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백두음【白頭吟】악부 가사의 이름. 한(漢)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무릉(武陵)의 여자를 첩(妾)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그의 아내인 탁문군(卓文君)이 “부부는 늙도록 정의가 변치 않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 노래를 지어 이혼(離婚)할 뜻을 밝혔는데, 이 노래를 듣고 사마상여는 끝내 무릉의 여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뒤에 이백이 이 고사로 백두음 2편을 지었다. 백두음【白頭吟】악부(樂府) 초조(楚調)의 곡 이름으로, 서경잡기(西京雜記) 제3권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무릉(茂陵) 사람의 딸을 첩으로 삼으려고 할 때, 탁문군(卓文君)이 백두음(白頭吟)을 지어 절교를 하자, 사마상여가 이에 그만두었다.” 하였다. 백두음성종차결【白頭吟成從此決】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무릉(茂陵) 사람의 딸을 첩(妾)으로 두려 하였는데, 이에 탁문군(卓文君)이 백두음을 지어 결별의 뜻을 밝히자 사마상여가 취소했던 고사가 전한다. 《西京雜記 卷3》 백등【白登】백등(白登)은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한 고조(漢高祖)가 흉노 묵돌(冒頓)을 치다가 여기에서 7일간 포위되어 곤욕을 당하였다. 백등대【白登臺】백등대는 중국 산서성(山西省) 대동시(大同市) 동쪽의 백등산 위에 있는데 흉노족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백락【伯樂】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 사람인데 말[馬]의 상(相)을 잘 보던 사람이다. 당(唐) 나라 한유(韓愈)의 송온처사부하양군서(送溫處士赴河陽軍序)에, “백락(伯樂)이 한 차례 기북(冀北)의 들판을 지나가자 준마가 드디어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하였고, 육덕명(陸德明)의 장자석문(莊子釋文)에 “백락의 성은 손(孫)이고 이름은 양(陽)인데 말을 잘 다루었다.”고 하였다. 좋은 말이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져 그 값이 10배로 올랐다는 고사와 일찍이 우판(虞坂)을 지나가는데, 기기(騏驥)가 소금수레 아래 엎드렸다가 백락을 보고서 길게 울어대니, 백락은 수레를 내려가서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 등이 있음. 백락일고【伯樂一顧】남이 자기 재능을 알고 잘 대우함. 현명한 사람 또한 그 사람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출세할 수 있음.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어느 사람이 백낙에게 ‘내가 말을 팔려고 하는데, 3일을 저자에 갖다 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한 번 와서 봐 달라.’ 하였다. 백낙이 가서 한 번 쳐다보니, 그 말의 값이 10배로 뛰었다.” 하였다. 백락자【伯樂子】백락의 아들이라는 말로, 어리석은 자식이란 뜻의 고사성어. 백락장【伯格長】촌락(村落)의 장(長)을 이름. ‘맥(伯)’은 천맥(阡陌), ‘락(格)’은 촌락(村落)을 가리킨다. 백란【伯鸞】부부(夫婦)간에 서로 예를 갖추며 공경하며 금슬이 좋았던 것으로 유명한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양홍(梁鴻)의 자(字).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결코 벼슬길을 구하지 않고, 어진 아내 맹광(孟光)과 함께 패릉산(覇陵山) 속으로 들어가 농사짓고 길쌈하며 살았다. 《東觀漢記 梁鴻ㆍ後漢書 逸民列傳 梁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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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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