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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百二】1백분의 2. 산하(山河)의 험고(險固)함을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에 “진(秦)나라는 땅이 험고하여 2만 명만 있으면 족히 제후(諸侯)의 백만 군사를 당할 수 있다.” 하였다. 백이산하(百二山河), 백이관산(百二關山)의 준말. 백이【伯夷】백이는 중국 은(殷) 나라의 처사로서 주 무왕(周武王)이 은을 치려는 것을 말리다가 듣지 않자 주 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럽게 여겨 아우인 숙제(叔齊)와 함께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인(仁)을 이루었다고 칭찬하였고, 맹자(孟子)는, “성인으로서 청렴한 자이다.[聖之淸者]”라고 하였다. 《史記 卷六十一 伯夷列傳, 孟子 萬章下》 백이산하【百二山河】산천의 형세가 아주 험고하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진(秦) 나라는 지형이 아주 험고한 나라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똑같이 1백만의 군사가 있으면 2백만의 군사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백이숙제【伯夷叔齊】형 백이와 아우 숙제는 은(殷)나라 고죽군의 아들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쳐 천하를 손 안에 넣자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러이 여기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고 한다. 백이양기【伯夷讓夔】순(舜)이 사악(四岳)에게 물어 삼례(三禮)를 맡을 인물을 추천하라고 했을 때 모두 백이(伯夷)라는 신하를 적격자로 추천했는데 이때 백이는 그것을 기(夔)와 용(龍)에게 양보하였음. 《書經 舜典》 백이전【伯夷傳】백이(伯夷)의 전기를 말함. 백이지청【伯夷之淸】백이의 청렴함. 백이채미사【伯夷採薇死】백이는 상(商) 나라 때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데, 주 무왕이 상 나라를 치자 이를 간(諫)하였고, 무왕이 천하를 차지함에 이르러서는 아우 숙제(叔齊)와 함께 의리상 주 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다가 굶어죽었던 고사이다. 백이청절【伯夷淸節】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聖人) 가운데 청(淸)한 자요, 이윤(伊尹)은 성인 가운데 자임한 자요, 유하혜(柳下惠)는 성인 가운데 화(和)한 자요, 공자(孔子)는 성인 가운데 시중(時中)인 자이다.” 하였다. 백이추정【伯鯉趍庭】공자가 일찍이 혼자 서 있는데, 이(鯉)가 허리를 굽혀 절하고 뜰앞을 지나가니 공자가 불러서, “시(詩)와 예(禮)를 배우라.” 하였다. 논어(論語) 백이협착【伯夷狹窄】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백이는 협착하고 유하혜(柳下惠)는 불공(不恭)하니, 협착함과 불공함은 군자(君子)가 따르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백익【伯益】백익은 옛날 요순(堯舜)의 신하인데 백예(柏翳)라고도 한다. 그는 순(舜) 임금을 도와 새와 짐승들을 길들였다. 공로가 있어 영씨(嬴氏) 성을 받았는데, 이가 바로 진(秦) 나라의 시조(始祖)이다. 《史記 卷五 秦本紀》 백인【百忍】당(唐) 나라 때 9대(代)를 동거(同居)하며 화목하게 사는 장공예(張公藝)의 집을 덕종(德宗)이 친히 찾아가 그 비결을 물으니, 그가 지필(紙筆)을 청한 뒤 참을 인(忍) 자를 일백여 번 썼다는 ‘백인성금(百忍成金)’의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孝友傳 張公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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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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