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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여산하【烽火驪山下】주나라 유왕(幽王)이 포사(褒姒)란 미인에게 미혹하였는데, 포사는 평생에 웃는 일이 없었다. 왕은 한 번 웃기기 위하여 거짓으로 여산에 봉화(烽火)를 올렸더니 사방의 제후(諸侯)들은 참으로 난리가 난 줄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왔다가 헛걸음을 하니 그제야 포사가 한 번 웃었다. 그 뒤에 정말 외적이 침입하였을 적에 봉화를 드니 제후들이 믿지 않고 군사가 오지 않아 국도(國都)가 함락되었다. 봉황대【鳳凰臺】경주(慶州)에 있는 누대(樓臺)로, 일본을 왕래하는 사신들이 들르던 곳이다. 봉황대【鳳凰臺】봉황대는 금릉(金陵)에 있는데, 이백이 시를 짓고 놀던 명승지이다. 이백(李白)이 금릉(金陵) 봉황대에 올라서 지은 시에, ‘삼산은 반이나 푸른 하늘 밖에 떨어졌고, 두 물은 백로주(白鷺洲)를 가운데로 나누었다[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는 구절이 있다. 봉황대【鳳凰臺】이백(李白)이 황학루(黃鶴樓)에 갔다가 최호(崔顥)의 황학루 시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지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아 짓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얼마 후 금릉(金陵) 봉황대(鳳凰臺)에 가서 봉황대(鳳凰臺) 시를 지었는데, 그 구성은 황학루 시를 모방하였다. 황학루 시에 “옛사람은 황학을 타고 떠나버리고, 이곳엔 텅 빈 황학루만 남았네[昔人巳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하였다. 봉황령【鳳凰翎】대나무 잎을 말함. 봉황명고강【鳳凰鳴高岡】시경(詩經) 대아(大雅)권아(卷阿)에 “봉황은 저 고강에서 울고[鳳凰鳴矣于彼高岡]”이라 하였다. 이는 주성왕(周成王)을 경계한 시다. 봉황모【鳳凰毛】문재(文才)가 뛰어난 것의 비유이다. 봉황비천인【鳳凰飛千仞】봉황은 높이 천 길 위에 날아서 굶주려도 곡식을 쪼아먹지 않는다 한다. 봉황주【鳳凰州】당(唐) 나라 도성인 장안성(長安城)을 봉황성이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봉황지【鳳凰池】금원(禁苑) 안의 연못.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금원에 중서성(中書省)을 설치하고 중요 기무를 관장하여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게 하였으므로, 중서성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봉황함서【鳳凰銜書】임금의 조서(詔書)를 받들고 가는 사신의 행차를 뜻하는 말이다. 주(周) 나라 때 봉황이 천서(天書)를 입에 물고 문왕(文王)의 도읍지에 날아와 노닐었으므로 무왕(武王)이 봉서(鳳書)의 기(紀)를 받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藝文類聚 卷99 引 春秋元命苞》 봉홰조양【鳳噦朝陽】일반적으로 어진 인재가 때를 만나 일어나는 때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오동나무가 자라날 때를 말한다. 조양은 아침 해가 뜨는 동산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니, 저 높은 산에서 우는도다. 오동이 자라니, 저 조양에서 자라는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하였다. 봉후골【封侯骨】먼 변방에서 큰 공을 세워 귀하게 될 골상(骨相)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반초(班超)가 서역(西域)에 종군(從軍)하여 만년에 정원후(定遠侯)로 봉해졌는데, 일찍이 관상가(觀相家)가 그의 연함호두(燕頷虎頭)의 상을 보고 만리후(萬里侯)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47》 봉희【封豨】봉희는 큰 멧돼지처럼 생긴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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