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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창【篷牕】뜸을 걸어 놓은 배[船]의 창을 말한다. 봉책【鳳柵】봉책(鳳柵)은 봉황성(鳳凰城)을 가리킨다. 봉천【奉倩】봉천은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 순찬(荀粲)의 자임. 봉천위【奉天圍】당 덕종(唐德宗)이 봉천(奉天)으로 피난을 갔다가 주자(朱泚)의 반군(叛軍)에게 포위를 당한 고사가 있다. 《舊唐書 卷12》 봉천조【奉天詔】당 덕종(唐德宗)이 주자(朱泚)의 난을 당하여 봉천(奉天)으로 쫓겨가 있을 때, 주자의 군대는 철통같이 봉천을 포위하였고, 양식도 거의 다하여 상황이 매우 다급해지자, 덕종이 장리(將吏)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부덕하여 스스로 위망의 지경에 빠졌으니, 이는 실로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경들은 아무 죄도 없으니, 의당 일찍 투항을 해서 처자를 구해야 할 것이다.”고 한 것을 말한 것이다. 《資治通鑑 卷二百二十九 唐德宗紀》 봉체【封遞】벼슬아치가 암행어사의 봉고(封庫)로 인해 체직되는 일. 봉춘군【奉春君】유경(劉敬)의 봉호(封號). 봉취【鳳吹】생황(笙篁)이나 퉁소 등의 악기. 여기서는 임금의 행차에 연주하는 음악을 뜻한다. 봉침【縫針】옷을 꿰매는 바늘. 봉태【逢殆】액을 당하다. 봉패위【逢覇尉】한(漢) 나라 때의 명장(名將) 이광(李廣)이 한때 파직되어 초야에 있을 적에, 하룻밤에는 기병(騎兵) 하나를 데리고 나가 어떤 이와 전간(田間)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패릉정(霸陵亭)에 이르렀을 때, 패릉위(霸陵尉)가 취하여 이광을 못 가게 하자, 이 광의 기병이 “옛 이 장군(李將軍)이다.”고 말하니, 패릉위가 말하기를, “지금의 장군도 밤에 다니지 못하는데, 무슨 까닭이냐?”하고는, 강제로 이광을 패릉정 밑에서 자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一百九》 봉해【蓬海】봉해는 봉래도가 있는 바다를 말한다. 봉해천【蓬海淺】봉해는 봉래도가 있는 바다를 말한다. 동한(東漢)환제(桓帝) 때 선인(仙人) 왕원(王遠)이 채경(蔡經)의 집에 내려와 선녀 마고(麻姑)를 불러왔는데, 마고가 말하기를 “내가 선인을 모신 이후 동해가 세 번 뽕밭이 된 것을 보았는데, 저번에 봉래에 가 보니 물이 또 그전에 모일 때보다 절반가량 얕아졌었습니다.”에서 나온 것이다. 봉현【鳳絃】가야금 줄을 말한다. 봉혜【鳳鞋】봉황새를 수놓아 꾸민 부인(婦人)의 신을 말한다. 봉혜하덕쇠【鳳兮何德衰】논어(論語)에, “접여(接輿)가 공자 앞을 지내 가며 노래 부르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쇠한고.’ 하였다.” 했다. 봉호【蓬壺】바다 속에 있다는 신선들이 사는 산인 봉래산(蓬萊山)을 말한다. 습유기(拾遺記) 고신(高辛)에, “삼호(三壺)는 바로 바다 속에 있는 세 산으로, 첫 번째는 방호(方壺)인데 이는 방장산(方丈山)이고, 두 번째는 봉호(蓬壺)인데 이는 봉래산이고, 세 번째는 영호(瀛壺)인데 이는 영주산(瀛洲山)으로, 모양이 마치 술병과 같이 생겼다.” 하였다. 봉호【封胡】봉호갈말(封胡羯末)의 약칭으로 진(晉) 나라 사씨(謝氏) 집안의 사소(謝韶), 사랑(謝郞), 사현(謝玄), 사천(謝川)의 자(字)인데, 모두 훌륭한 인물들이었다. 봉호【封狐】봉호는 큰 여우를 말하는데, 염토(炎土) 지대에는 이런 것들이 사람을 많이 해친다는 뜻으로, 초사(楚辭) 초혼(招魂)의 “복사가 쌓여 있고 봉호는 천리에 우글거린다[蝮蛇蓁蓁 封狐千里].” 하였다. 봉호몰인【蓬蒿沒人】후한(後漢) 장중울(張仲蔚)이 “蓬蒿沒人”한 집에서 영명(榮名) 대신 양성(養性)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유공(劉龔)만은 알아주었다고 한다. 《高士傳 中 張仲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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