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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일【捧日】송나라가 망할 때에 황태후인 가씨(賈氏)의 꿈에, 하늘에서 해가 떨어지는 것을 어떤 선비가 받아서 받들고 있었는데, 깨어서 그 꿈에 보았던 선비를 찾다가 육수부(陸秀夫)라는 사람을 발견하여 발탁 등용하였는데, 그 후에 과연 육수부는 원(元)나라 군사에 쫓기면서도 어린 8세 황제를 모시고 충성을 다하다가 최후에는 그 어린 황제를 업고 물로 뛰어들어 같이 죽었다. 봉입금지【鳳入禁池】중서성(中書省)을 봉황지(鳳凰池)라 한다. 봉입금지교【鳳入禁池翹】요직(要職)에서 벼슬한 것을 말한다. 중서성(中書省)이 금중(禁中)에 있어 중요한 정무(政務)를 처리하여 임금의 총애를 많이 받기 때문에, 중서성을 봉황지(鳳凰池)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는 문하성(門下省)을 지칭한 것이다. 문선(文選) 사조 직중서성시( 謝眺 直中書省詩)에 “여기가 상봉지라는 곳이지, 패옥소리 쟁그랑쟁그랑 울리네.[玆言翔鳳池 鳴珮多淸響]" 하였다 봉자【鳳觜】십주기(十洲記)에 “도가(道家)에서 봉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합하여 달여 만든 아교를 속현교(續絃膠)라고 하는데 이를 사용해 끊어진 활줄을 잇는다.”고 하였다. 봉자【鳳姿】임금의 자태 봉자서로【鳳觜犀顱】신체적으로 특이함. 봉의 부리, 무소 두개골은 관상학(觀相學)에 있어 모두 귀인(貴人)의 상에 속함. 봉장추【鳳將雛】봉황이 새끼를 거느리고 있다는 뜻. 어버이와 자식이 함께 있는 것을 노래한 옛 악곡의 이름이다. 고악부(古樂府) 농서행(隴西行)에, “봉황새 추추히 우는구나, 한 어미 아홉 새끼 거느리고[鳳凰鳴啾啾 一母將九雛].”라 했음. 봉전【葑田】줄풀[菰]이나 마름[菱]이 여러 해 동안 자라며 썩은 진흙이 쌓여서 밭이 된 것을 말한다. 봉조【鳳詔】봉조는 임금의 조칙(詔勅)이다. 후조(後趙)의 석계룡(石季龍)이 오색지(五色紙)에다 조서(詔書)를 써서 나무로 만든 봉(鳳)의 입에 물려서 반포(頒布)하였다. 봉조부지상중니【鳳鳥不至傷仲尼】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봉황새가 오지 않고 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도 이제 그만인 모양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봉주【鳳咮】연석(硯石)의 이름이다. 송(宋) 나라 때 용배산(龍焙山)은 마치 나는 봉황이 고개를 숙여 물은 마시는 형상과 같았는데, 그 봉황의 부리에 해당하는 곳에 결이 옥(玉)같이 고운 창흑색(蒼黑色)의 돌이 있어, 그 돌로 만든 벼루를 소식(蘇軾)이 봉주(鳳咮)라고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봉주【鳳州】현재의 섬서성(陝西省) 봉현(鳳縣). 봉지【鳳墀】궁전(宮殿) 또는 궁궐의 뜰을 말한다. 봉지【鳳池】당(唐) 나라 중서성(中書省)이 있는 못 이름인데, 전하여 중서성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한림원(翰林院)에 해당함. 봉지【鳳池】봉지(鳳池)는 궁궐에 있는 봉황지(鳳凰池)로서 즉 금중(禁中)을 말한다. 봉지완공영【蓬池阮公詠】완공은 진(晉) 나라 때 완적(阮籍)을 가리킴. 완적의 영회시(詠懷詩)에 “봉지 가에서 배회하고 다시 머리 돌려 대량을 바라보네[徘徊蓬池上 還顧望大梁].”라고 한 것을 말하는데, 봉지는 즉 진(晉) 나라의 장군 조적(祖逖)이 비분강개하여 후조 황제(後趙皇帝)를 참칭한 오랑캐 석륵(石勒)과 싸웠던 곳이다. 《文選 卷二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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