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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액【縫腋】공자가 송 나라에 살 때에는 그 곳에서 쓰는 장보관(章甫冠)을 쓰고, 노(魯) 나라에 살 때에는 봉액의(縫腋衣)를 입었다 하여 후세에서 유학(儒學)하는 이의 의관(衣冠)을 이것으로 말하였다. 봉액【逢掖】봉액은 소매가 넓은 유자(儒者)의 옷을 말한다. 봉액【鳳掖】봉액은 한림원(翰林院)을, 가리킨다. 봉액【縫掖】유자(儒者)가 입는, 겨드랑만 꿰매어 옆이 넓게 터진 옷. 봉억【鳳臆】천리마의 별칭. 봉연【鷄人】봉연은 제왕의 가마임. 봉영【逢迎】만나는 사람들마다 병사(兵使)의 눈치만 보며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뜻이다. 봉영【蓬瀛】봉래산(蓬萊山)과 영주산(瀛洲山)을 말하는데 신선이 산다고 한다. 봉영이매【逢迎魑魅】소동파(蘇東坡)가 먼 곳으로 귀양가서 임금에게 올린 글에, “이매(魑魅)가 바다 위에 마중 나왔으니, 어찌 살아서 돌아가기를 바라리이까.”라는 구절이 있다. 봉옥【封屋】임금의 교화가 사해에 두루 미쳐 풍속이 아름다워지니 집집마다 모두 덕행(德行)이 있어서 정표(旌表)할 만하다는 말이다. 봉요【蜂腰】벌의 허리처럼 한 가운데가 가늘다는 뜻이다. 시를 지을 때 칠언시의 4번째 자가 평성(平聲)이고 그 앞뒤의 자가 측성(仄聲)인 경우 또는 오언시에 2번째 글자가 평성(平聲)이고 그 앞 뒤 자가 측성(仄聲)인 경우 허리가 짤록한 벌과 같다하여 봉요(蜂腰)라고 하며 이를 피한다. 봉우장집【鳳羽長戢】군자(君子)가 출세(出世)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봉우진【封于秦】진시황(秦始皇)이 태산(泰山)에 갔다가 비를 만나 소나무 밑에 피하고, 그 소나무를 대부(大夫)로 봉했다. 봉원【蓬原】동래(東萊)의 별칭이다. 봉유【封留】전한(前漢)의 공신(功臣) 장량(張良)이 유후(留侯)에 봉해진 것을 말한다. 한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평정한 뒤에 공신을 봉하면서 장량에게 제(齊)나라 땅에 삼만 호(三萬戶)되는 지방을 마음대로 선택하게 하니, 그는 ‘신이 처음 폐하(陛下)를 유(留)에서 만났으니 유후(留侯)로 봉하면 족합니다.” 하였다. 봉유족【封留足】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공신들을 봉(封)할 적에, 장량(張良)의 공이 가장 크다 하여 그에게 삼만호(三萬戶)를 봉해주려고 하자, 장량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신(臣)은 유(留) 땅에 봉해진 것만으로 만족하고, 삼만호는 감히 당치 않습니다.” 하여, 마침내 장량을 유후(留侯)로 봉해준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五十五》 봉의【縫衣】옛날 유자(儒者)가 입던 소매가 넉넉한 옷이다. 봉이【封姨】풍신(風神)의 이명(異名)이다. 봉익【鳳翼】봉황의 날개로, 대궐 처마를 가리킨다. 봉인【封印】밀봉한 자리에 도장을 찍음. 또는 그 도장. 봉인【封人】변방을 지키는 벼슬아치를 가리킨다. 봉인【奉引】임금의 앞에서 수레를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봉인【封人】주(周)나라 때 사도(司徒)에 소속된 벼슬로, 제왕의 사직단과 경기 지방의 수호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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