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북고【北固】지금 단도현(丹徒縣) 북쪽에 있는 산이름. 삼면(三面)에 물이 둘러 있고 형세가 험준한 곳으로 유명하다. 북고【北姑】한북(漢北)에 있는 지명 북고사【北固寺】당(唐) 나라 때의 절로, 좋은 대가 자라는 곳이다. 이덕유(李德裕)가 그 절의 중을 시켜서 매일 대나무가 잘 있는지를 보고하게 하였다. 북궁영아【北宮嬰兒】북궁영아는 전국(戰國) 시대 제(齊) 나라의 효녀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조 위후(趙威后)가 제나라 사신에게 ‘북궁영아는 무고한가.’하고 안부를 물었다.” 하였다. 북궁유【北宮黝】전국 시대의 역사(力士)로 남에게 지지 않고 임금 찌르기를 거지 찌르듯 하던 자. 북궐【北闕】임금의 대궐은 남향(南向)이므로 북궐(北闕)이 된다. 북극【北極】대궐 쪽의 하늘을 가리킨다. 조정이 위치한 서울을 비유한 말이다. 북극【北極】북극성. 진리. 북극성【北極星】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참고로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 “덕으로 정치하는 것이,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모든 별들이 그곳을 향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북당훤【北堂萱】위풍(衛風) 백혜(伯兮)에 “어디서 원추리 하나 얻어, 집 뒤켠에 심어 볼꼬.[焉得萱草 言樹之背]”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친의 거처를 북당(北堂) 혹은 훤당(萱堂)이라고 하게 되었다. 북두【北斗】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리키는 말. 북두칠성이 모든 별들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에 비유하고 있음. 북두남기【北斗南箕】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남쪽엔 키라는 별이 있으나 곡식을 까부르지 못하고 북쪽엔 말이라는 별이 있으나 주장을 뜰 수가 없도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把漿]”하였다. 북두불가읍【北斗不可挹】북두는 임금을 상징한 것으로, 여기서는 요로(要路)에 올라 임금을 가까이 모시지 못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북두우【北斗牛】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북방의 두성과 우성임. 북두작창명【北斗酌滄溟】북두성(北斗星)이 말[斗] 모양으로 생겼으므로 그것으로 바닷 물을 푸겠다는 말이다. 북등선우대【北登單于臺】한 무제(漢武帝)가 18만 병력을 직접 이끌고 장성(長城)을 나와 북쪽으로 가서 선우대에 올랐던 것을 가리킨다.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元封 元年 冬十月 …… 行自雲陽 北歷上郡西下五原 出長城 北登單于臺”라는 기록이 있다. 선우대는 지금의 수원성(綏遠省) 귀화성(歸化城) 서쪽에 있다고 한다. 북령욕【北嶺辱】은자(隱者)가 아닌 사람이 은자인 척하며 산을 더럽힘을 뜻함. 북령은 곧 북산(北山)을 가리키는데,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푸른 산을 재차 욕되게 하고, 붉은 절벽을 거듭 때묻게 한다.[碧嶺再辱 丹崖重滓]” 한 데서 온 말이다. 북로어【北路魚】송(宋) 나라 서군천(徐君蒨)이 유흥을 좋아하였는데 양(梁) 나라 상동왕(湘東王)의 참군(參軍)이 되자 수레에 기생들을 싣고 형초(荊楚)의 산천을 빠짐없이 유람하였다. 그 때 양양(襄陽) 어홍(魚弘)도 호방하고 사치스럽다고 일컬어졌으므로 부중(府中)에서 노래하기를, “북쪽에는 어씨이고 남쪽에는 서씨이네.[北路魚 南路徐]”라고 하였다. 《南史 卷 15 徐君蒨傳》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