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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北山】남경(南京)에 있는 종산(鍾山)으로, 은자(隱者)가 은거하여 사는 산을 말한다. 육조(六朝) 때 송(宋) 나라의 공치규(孔穉圭)가 주옹(周顒)이 자신과 함께 종산에 은거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종산에다가 이문을 새겨 주옹으로 하여금 다시는 종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북산령【北山靈】남조 제(齊)의 주옹(周顒)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벼슬에 나아간 뒤 다시 이 산을 거쳐서 가게 되자, 공치규(孔稚珪)가 북산의 산신령을 가탁하여 ‘북산이문(北山移文)’이라는 글을 지어서 그의 변절을 풍자한 바가 있다. 북산문【北山文】끝까지 은거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 남제(南齊) 때에 공치규(孔稚圭)가 주옹(周顒)이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끝까지 은거하지 못하고 벼슬길에 나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어 북산이문을 지어 그를 책망한 데서 온 말이다. 북산송초【北山竦誚】남제(南齊) 때 주옹(周顒)이 처음에는 북산에 은거(隱居)해 있다가 조서(詔書)를 받고는 바삐 나와서 해염현령(海鹽縣令)이 되자 공치규(孔稚珪)가 산령(山靈)의 뜻을 가탁(假托)하여 “여러 동학(洞壑)이 비웃고 많은 산봉우리가 꾸짖는다.”는 등의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조롱하였다. 북산시【北山詩】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으로, 주(周) 나라의 유왕(幽王) 때 역사(役使)가 고르지 못하여 자신만이 일을 하느라 수고로워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읊은 시이다. 북산이문【北山移文】남제(南齊) 때 공덕장(孔德璋)이 지은 글로, 은사(隱士) 주옹(周顒)의 변절을 몹시 나무란 내용이다. 북산이문【北山移文】육조(六朝) 시대 송(宋) 나라 주옹(周顒)이 처음 북산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관직을 제수받고 나가자, 함께 은거했던 친구인 공치규(孔稚圭)가 그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북산 신령의 이름을 가탁하여 관청의 통문(通文)을 본떠 이문(移文)을 써서, 주옹이 두 번 다시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북산지감【北山之感】북산에서 느끼는 감회. 북산(北山)은 궁궐의 상징어이다. 나라 일에 힘쓰느라고 부모봉양을 제대로 못한 것을 슬퍼하는 마음을 말한다. 북산참【北山慚】남제(南齊) 때 주옹(周顒)이 처음 북산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뜻을 바꾸어 벼슬길에 나가자, 공치규(公稚珪)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북산 신령의 뜻을 가탁해서, 주옹이 변절하여 북산에 수치를 끼쳤다는 뜻으로 그를 배척했던 데서 온 말이다. 북산편【北山篇】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주(周) 나라의 유왕(幽王) 때에 역사(役使)가 고르지 못하여 자신만이 일을 하느라 수고로워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읊은 시로 “대부가 균평하지 못하여서, 나 혼자만 종사케 해 홀로 어질다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하였다. 《詩經 小雅 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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