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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頭陀】불가(佛家)의 말로 고행(苦行)을 하여 온갖 번뇌(煩惱)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두탕호청사【杜蕩護淸司】연산군 때에 늙은 흥청(興淸)들이 말썽을 일으킬까봐 집을 마련하여 살게 하고 관리하던 곳. 두통첩【肚痛帖】장욱의 초서 서간(書簡)으로 두통첩이 있음. 두평【斗萍】두평(斗萍)은 크기가 말만한 평실(萍實)로, 큰 공훈이나 맛있는 음식을 뜻한다. 초(楚) 나라 소왕(昭王)이 강을 건널 적에 크기가 말만한 어떤 물체가 배에 다가오자, 소공이 괴이하게 여겨 건져 올리게 한 다음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공자에게 사신을 보내어 물어보니, 공자가 “이것의 이름은 평실(萍實)이라고 하는데, 쪼개면 먹을 수가 있다. 다만 패왕(霸王)이 될 만한 사람이라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는바, 상서로운 징조이다.” 하였다. 《孔子家語 致思》 두풍【頭風】병명(病名). 머리가 항상 아프거나, 또는 계속하여 부스럼이 나는 병. 두풍유【頭風愈】시문이 뛰어남을 이른 말이다. 삼국 시대에 원소(袁紹)가 진림(陳琳)을 시켜 조조(曹操)를 성토하는 격문(檄文)을 초하게 하여 조조에게 보냈더니, 조조는 때마침 두풍(頭風)을 앓고 있다가 그 격문을 보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부지중에 두풍이 나았다 한다. 두함【頭銜】관리(官史)의 위계(位階)를 적은 관함(官銜)을 이름. 두헌【竇憲】동한(東漢) 때의 권신(權臣). 두헌은 화제(和帝) 때 황제가 어린 틈을 타 두 태후(竇太后)의 오빠로서 권력을 차지하여 마음껏 권력을 부리다가 화제가 장성한 뒤에 자살을 명 받고 자살하였다. 《後漢書 卷23 竇融列傳 竇憲》 두후침비【杜侯沉碑】두후는 두예(杜預)를 가리킨다. 진서(晋書) 두예전(杜預傳)에 “두예는 후세에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여 자기의 훈적(勳績)을 기록한 비석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만산(萬山) 아래 있는 못에다 잠겨 놓고 하나는 현산(峴山) 위에 세워 놓고는 ‘후세에 골짜기가 언덕이 되고 언덕이 골짜기가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했다.” 하였다. 두흑【頭黑】머리가 아직 검은 젊은 시절. 두힐【豆肹】전라도 나주목(羅州牧) 회진폐현(會津廢縣)의 백제(百濟) 시대 이름. 《新增東國輿地勝覽》 둔곡【遯谷】둔곡은 운둔자가 살기에 합당한 골짜기라는 말이다. 주역(周易)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의 상사(象辭)에 “못의 물이 나무 위에까지 차오르는 것이 대과괘의 상이니, 군자는 이 점괘를 보고서 홀로 우뚝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澤滅木 大過 君子 以 獨立不懼 遯世無悶]”하였다. 둔괘삼효【遯卦三爻】둔괘는 날로 정의가 없어지고 부정 부패가 만연되는 때에 군자가 은둔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데, 구삼효(九三爻)에는 은둔하고 싶어도 처자 권속 때문에 차마 버리고 가지 못한 채 집에서 가만히 쉬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둔덕령【屯德嶺】충청도 비인(庇仁) 동쪽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둔세【遁世】세상을 피해 숨음. 둔암시【遯庵詩】돈암은 중종(中宗)~광해(光海) 때의 문신 황섬(黃暹)의 호. 광해군 때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화를 입자, 영경의 처남으로서 이에 연좌되어 파직당하였음.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열중하였음. 둔옹【鈍翁】둔옹은 청(淸) 나라 왕완(王琬)의 호. 왕완은 경사(經史)를 비롯하여 예학(禮學)에 이르기까지 발명(發明)한 것이 많았다. 둔옹【遯翁】송(宋) 나라 주희(朱熹)의 호이다. 둔옹【遁翁】이집(李集)의 별호. 둔운【屯雲】뭉친 구름인데, 궂은 운명의 상징이다. 둔일【遁逸】숨어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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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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