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동의【童衣】동의는 청의동자(靑衣童子)를 줄인 말이다. 옛날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사면령(赦免令)을 쓰고 있었는데, 쉬파리[靑蠅]가 한 마리 날아들어와 쫓으면 다시 오곤 하였다. 조금 뒤에 사람들이 사면령 내릴 것을 전부 알고 있으므로, 사실을 알아보니 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길거리에 사면령이 내렸다고 소리치고 다녔다 했다. 그제서야 부견은 전의 쉬파리가 바로 청의동자로 화했음을 알았다 한다. 《白孔六帖》 동이누【東夷陋】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되, “누(陋)하리이다.” 공자가 말하되,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동이불화【同而不和】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도 내심은 그렇지 않음. 동이수【童二樹】동이수는 청 나라 산음(山陰) 사람인데 이름은 옥(鈺), 자는 박암(璞巖), 호는 이수이다. 산수(山水)ㆍ난죽(蘭竹)ㆍ목석(木石)에 두루 공력이 있었음. 동인【銅人】구리로 주조하여 궁문(宮門)과 묘문(廟門) 앞에 세웠던 동상. 동적(銅狄)이라고도 함.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 계자훈(薊子訓)이 장안(長安) 동쪽 패성(霸城)에서 한 늙은이와 함께 동인을 마사(摩挲)하며 서로 이르기를 “마침 이것을 지어붓는 것을 보았는데 이미 5백 년이 가까웠다.” 하였음. 소식의 시에 “摩挲古銅人 歲月不可計" 라 하였음. 동인【銅印】동인은 지방 관원이 차는 동호부(銅虎符)를 말한다. 동인【同人】뜻을 같이하는 벗을 말한다. 동인【同仁】피차(彼此)의 차별없이 평등하게 인애(仁愛)를 베푼다는 뜻. 한창려집(韓昌黎集) 권11 원인(原人)에 “성인(聖人)은 온 천하를 한결같이 보아 인애를 같이 베푼다.” 하였다. 동인괘【同人卦】뜻이 맞는 사람들의 화합을 상징함. 동자【董子】동중서(董仲舒)로 중국 전한 때의 대학자로 한때는 학문에 열중하여 3년 동안이나 자기집 밭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하였다고 전해진다. 《史記 儒林列傳》 동자하유【董子下帷】이 말은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下帷講誦 弟子傳以久次相授業 或莫見其面”이라고 보임. 동작대【銅雀臺】동작대는 악부가사(樂府歌詞)의 이름. 이 동작대 가사의 내용은 위 무제(魏武帝 삼국(三國)시대의 조조(曹操))가 죽을 무렵에 그의 기첩(妓妾)들을 연연(戀戀)한 일과 그의 기첩들이 무제가 죽은 뒤에 쓸쓸히 무제의 은총을 추모하는 등의 일을 서술하였다. 동장【東墻】송(宋) 나라 조사행(趙師睪)의 호(號). 그 당시에 정권을 잡은 한탁주(韓侂冑)가 애첩(愛妾) 14명을 두었는데, 어떤 사람이 북주관(北珠冠) 4개를 선사하였다. 탁주는 4명의 애첩에게만 나누어주었으므로 나머지 10명이 모두 욕심을 냈으나 주지를 못했다. 사행은 그 소문을 듣고 돈 10만 꾸러미를 들여 북주(北珠)를 사서 관(冠) 10개를 만들어 바치고, 자기의 첩을 시켜 벼슬을 구하도록 하여 공부 시랑(工部侍郞)에 승진되었다. 《宋史 卷二百四十七》 동장【銅章】지방 수령이 차는 구리로 된 관인(官印)을 말한다. 동부(銅符)라고도 한다. 동장묵수【銅章墨綬】지방관이 차는 관인(官印)과 인끈으로, 외직(外職)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때 2천 석(石) 이하의 관리가 몸에 차던 동인(銅印)과 묵수(墨綬)로, 보통 현령(縣令)을 뜻하는 말이다. 동적【銅狄】동인(銅人)이라고도 하고 금적(金狄)이라고도 하는데, 진시황(秦始皇)이 만들어 함양(咸陽 장안)에 세워 두었던 것이다. 후한(後漢) 때 도사 계자훈(薊子訓)이란 사람이 장안의 동쪽 패성(覇城)에서 어떤 노인 한 사람과 동인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내가 때마침 이것을 주조한 일을 보았는데 벌써 5백이 다 되어 간다.”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로, 장수를 누린다는 뜻으로 인용된다. 《後漢書 卷八十二下 薊子訓傳》
05/10/15/20/25/30/35/40/45/50/55/60/65/70/75/80/85/9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