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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대려【山河帶礪】한(漢) 고조(高祖)가 공신(功臣)들에게 나라를 봉해 주면서 맹세한 글에, “황하가 띠와 같이, 태산이 숫돌과 같이 되도록 나라가 길이 있게 하고 이것이 후손들에게 미치리라.” 하였다. 산하보위국【山河寶魏國】사기(史記) 제65권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무후(武侯)가 서하(西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중간에서 오기(吳起)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아름답구나, 산하의 튼튼함이여. 이는 우리 위(魏) 나라의 보배이다.’ 하니, 오기가 대답하기를, ‘나라가 튼튼한 것은 덕(德)에 있지 험함에 있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만약 덕을 닦지 않는다면 이 배 안에 탄 사람이 모두 적국 사람일 것입니다.’ 하였다.” 하였다. 산하서【山河誓】공신(功臣)에게 작(爵)을 봉하는 맹세.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땅을 봉해 줄 때에 그 맹세하는 글에 “황하(黃河)가 띠[帶]가 되기까지, 태산이 숫돌이 되기까지 나라가 길이 보전하고 자손에게까지 미치라.”는 말이 한서(漢書) 공신표서(功臣表序)에 보인다. 산하여대【山河礪帶】공신(功臣)을 봉(封)해 주는 맹세의 말인데, “황하의 물이 띠[帶]와 같이 줄고, 태산이 숫돌같이 작게 되도록 영원히 서로 나라를 보전하여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자.”는 것이다. 산하표리【山河表裏】외산 내하(外山內河)의 뜻으로, 즉 큰 산과 큰 강으로 둘러싸인 험한 요새지를 가리킨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28년에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밖과 안으로 산과 강물이 막고 있으니 반드시 해 될 것은 없다.[若其不捷 表裏山河 必無害也]”라는 말이 나온다. 산해지【山海誌】산해경. 작자(作者)를 알 수 없는 지리서(地理書)로서 특히 인류(人類)를 비롯하여 산천(山川),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산해진미【山海珍味】산과 바다의 진귀한 맛이라는 뜻으로,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썩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의 의미. 산진해미(山珍海味), 수육진미(水陸珍味). 산행병마사【山行兵馬使】고려 명종 때에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의 망이(亡伊), 망소이(亡所伊)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는 스스로 일컬은 이름. 산호【山胡】새 이름임. 산호격【珊瑚擊】진(晉)나라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이 서로 호부(豪富)를 자랑하였는데, 왕개는 진무제(晉武帝)의 외숙이었므로 무제가 왕개에게 높이가 이척(二尺)이나 되는 산호수(珊瑚樹)를 주므로 석숭에게 보이자, 석숭이 쇠방망이로 때려부수니 왕개가 노하였다. 이에 석숭이, “내가 지금 자네에게 갚아 주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자기 집에 있는 산호수를 모두 가져오게 하니 석 자 넉 자 되는 것이 6, 7개나 되고, 왕개의 것과 같은 것은 매우 많았다. 산호격처유교심【珊瑚擊處有驕心】진(晉) 나라 때 왕개(王愷)와 석숭(石崇)은 부호(富豪)로 유명했었는데, 한 번은 왕개가 2척(尺)이 넘는 산호수(珊瑚樹)을 하사받고는 자랑삼아 보이자, 석숭은 하찮게 여기고 부숴버렸다. 왕개는 자기의 보물을 질투한 것이라고 하자, 석숭은 자기 집의 산호수를 모두 가져오게 하였는데, 그 중에는 3~4척이 넘는 것만도 6~7개나 있었다 한다. 《晉書 石崇傳》 산호망수【珊瑚網收】불림(拂箖)이라는 나라에서 뱃사람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철망을 던져 산호를 뿌리째 캐내는데, 산호를 제때에 캐지 않으면 썩어 버린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新唐書 西域傳下》 산호전상자금용【珊瑚殿上紫金容】법주사에 산호전이 있고, 거기 금신(金身) 장륙상(丈六像)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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