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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署經】당하관(堂下官)을 임용할 때, 이조(吏曹)에서 피임자(被任者)의 문벌ㆍ이력ㆍ내외 4조(父ㆍ祖ㆍ曾祖ㆍ外祖)와 처(妻)의 4조를 기록하여 양사(兩司 司憲府ㆍ司諫院)에 제출하면, 양사는 그를 심사한다. 그리하여 결점이 없다고 판단되면, 양사의 대간(臺諫)이 모두 서명하는데 이를 서경(署經)이라 하고,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서명을 거부하는데 이를 월서(越署) 또는 월서경(越署經)이라고 하였다. 서경에 통과되어야 직첩(職牒)을 발급하는 것이 법례이므로, 이조(吏曹)는 양사에 3차 서경(署經)을 요구하는데 그래도 통과되지 않을 경우는 부득이 체임(遞任)시켰던 것이다. 서경【西京】한(漢)나라 때의 도성(都城)인 장안(長安)을 이름. 서한(西漢)의 수도는 장안이고, 동한(東漢)의 수도는 낙양(落陽)이었는데, 이 때문에 낙양을 일컬어 동경(東京)이라 하고, 장안을 일컬어 서경(西京)이라 이르게 되었다. 또한 원 뜻을 확대, 파생하여, 동한을 동경, 서한을 서경이라 하기도 함. 서경【西坰】한준겸(韓浚謙)의 봉호(封號)이다. 서경루망【西京漏網】서경은 전한(前漢) 시대의 도읍지를 말하고, 누망(漏網)은 죄인이 법망(法網)을 빠져나가는 것을 이르는데, 육기(陸機)의 오등제후론(五等諸侯論)에 “육신은 약망을 범하였고, 칠자는 누망에 저촉되었다.[六臣犯其弱網 七子衝其漏網]" 한 주석에 “누망은 한 경제(漢景帝) 때에 법망이 느슨했던 것을 이른 말이다.” 하였다. 서경이자【徐卿二子】서경(徐卿)의 두 아이란, 두보(杜甫)가 서씨(徐氏)의 비범한 두 아이를 찬미하여 지은 서경이자가(徐卿二子歌)에 “그대는 서경의 비범하게 생긴 두 아이를 못 보았나 …… 장부가 아이를 낳아 이 두 아이 같은 아이를 둔다면 후일에 명위가 어찌 드러나지 않겠는가[君不見徐卿二子生絶奇 …… 丈夫生兒有如此二雛者 異時名位豈肯卑微休]” 한 데서 온 말이다. 《白氏長慶集 年譜ㆍ佔畢齋集 年譜ㆍ杜少陵集 卷十》 서경지자【西京之字】한 나라 서경의 예서(隸書) 임. 서계【書契】문자(文字)를 말함. 중국의 아주 태고 적에는 문자가 없어서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 정령(政令)의 부호로 삼다가, 복희씨(伏羲氏)가 왕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周易 繫辭下》 서곡【黍谷】연(燕) 나라에 치운 골[谷]이 있어 곡식이 되지 않는데, 추연(鄒衍)이 음률(音律)로서 양기(陽氣)를 불어넣었더니 따뜻하여져서 기장[黍]이 나서 자랐다. 그러므로 서곡(黍谷)이라 한다. 서곡【黍谷】중국 하북(河北) 밀운현(密雲縣)에 있음. 서곡은 땅이 아름다우나 너무 차서 오곡이 나지 않는데 추연(鄒衍)이 살면서 율(律)을 불어 따뜻하게 하여 화서(禾黍)가 자식(滋殖)했다고 함. 《列子 湯問》 주희의 매화시(梅花詩)에 “自欣羌笛娛夜永 未要鄒律回春溫" 의 구가 있음. 서곤【西崑】서곤은 서방의 곤륜군옥산(崑崙群玉山)으로 고대 제왕의 장서각(藏書閣)이 있던 곳이다. 서곤장길【西崑長吉】서곤은 중국의 서쪽에 있는 곤륜산(崑崙山)인데, 여기서는 옥(玉)이 많이 생산되므로 전(轉)하여 제왕(帝王)의 도서관을 칭한다. 서공【書空】속마음이 불평스러우나 겉으로는 표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은호(殷浩)가 중군장군(中軍將軍)이 되었다가 남의 무함을 입어 신안(信安)으로 쫓겨났는데, 겉으로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이 없이 평상시처럼 담소하였다. 그러면서 매일 손가락으로 허공에 대고 무슨 글자를 썼는데, 사람들이 몰래 엿보니 ‘돌돌괴사(咄咄怪事)’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世說新語 黜免》 서공부【舒公賦】서공은 당(唐) 나라의 서원여(舒元輿)를 말한다. 그의 모란부(牡丹賦)에 “저 하늘의 상서, 기운 별이 되고 구름 되고.[圖元瑞精 有星而景 有雲而卿]" 라는 구절이 있다. 서광【曙光】새벽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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