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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洗兵】군대(軍隊)를 젖게 한다는 것은 곧 대장(大將)이 출정(出征)하는 것을 뜻한다. 위 무제(魏武帝)의 병요(兵要)에 의하면 “대장이 출정하려고 할 때 비가 내려서 의관(衣冠)을 적시는 것을 세병(洗兵)이라 한다.”고 하였다. 세병【洗兵】병기를 깨끗이 씻어 거두어 두는 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을 뜻한다. 세병마【洗兵馬】세병마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싸움이 없다는 표시로서 무기와 말을 깨끗이 씻는 것을 이름. 세병정【洗兵亭】선조(宣祖) 36년(1603)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충무(忠武)에 창건한 세병관(洗兵館)을 가리킨다. 세병하미만【洗兵河未挽】갑병은 갑옷과 무기로, 갑병을 씻는다는 것은 곧 전쟁을 그만둠을 뜻하는데, 두보(杜甫)의 세병행(洗兵行)에 “어떻게 하면 장사를 얻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병을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을꼬[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 卷六》 세부【世婦】후궁(後宮)의 여관(女官). 정원이 27명이다. 세사【細思】곰곰이 생각하다. 세서례【洗書禮】책씻이. 옛날 책을 한권 다 읽고 나면 떡을 해서 나누어 먹던 일. 원래는 어린이들이 서당(書堂)에서 책 한 권을 떼면 부모들이 떡을 해주어 같이 나누어 먹게 하던 데에서 유래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남조(南朝) 송(宋)의 유의경(劉義慶)이 찬함. 양(梁) 유효표(劉孝標)가 주석을 담. 원명은 세설(世說)로 고대소설집이다. 유의경세설, 세설신서라 불렀으나, 북송(北宋) 이후로 현재의 명칭이 되었으며, 덕행(德行)ㆍ언행(言行)부터 혹닉(惑溺)ㆍ구극(仇隙)까지의 36문(門)으로 나눈 3권본으로 정해졌다. 지인소설(志人小說)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선행하는 동류의 재료와 진(晉)나라 배계(裵啓)의 어림(語林)이나 곽반(郭頒)의 위진세어(魏晉世語) 등을 바탕으로 하여, 유의경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이 선택,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지식인과 중세 호족(豪族)의 생활태도를 생기발랄한 콩트식으로 묘사하였으며, 한말부터 위ㆍ진 무렵의 귀족계급 주변의 사상ㆍ풍조를 후세에 상세히 전하고 있다. 양(梁)나라 유효표(劉孝標)의 주(註)는 나중에 없어진 사료(史料)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육조(六朝) 때의 동류(同類)의 주석인 송나라 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注), 북위(北魏) 역도원의 수경주(水經注)와 함께 존중된다. 그 밖에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 등이 있다. 현재 왕조(汪藻)의 서록(敍錄)을 곁들인 송판(宋版 尊經閣本)이 진정(秦鼎)의 주해 세설전본(世說箋本)과 함께 이용되고 있다. 세성【歲星】동방(東方)의 목성(木星). 궤도대로 잘 가면 군주(君主)가 복이 있고 농사가 잘 되며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이 질병이 많다고 함.《史記 天官書 注》 한(漢) 나라 동방삭(東方朔)이 무제(武帝)를 섬기던 18년 동안에는 세성(歲星)이 하늘에 보이지 않다가 그가 죽고 나자 비로소 하늘에 다시 나타났으므로 무제가 후회하며 탄식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성재세【歲星在世】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있는 18년 동안에는 세성이 보이지 않았다가 그가 죽은 뒤에 세성이 다시 나타났다 하여, 그의 전신(前身)이 세성이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세세【世世】거듭된 세대, 대대(代代) 세세【歲歲】해마다 세세향류전【細細香留篆】가느다랗고 구불구불한 전서의 획이 마치 향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는 데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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