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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小毛】소모는 모형의 훈고전을 전수한 한(漢) 나라 때의 모장(毛萇)을 말한다. 소목【昭穆】사당에 신주(神主)를 모시는 차례. 천자(天子)는 1세를 중앙에, 2세ㆍ4세ㆍ6세는 소라 하여 왼편에, 3세ㆍ5세ㆍ7세는 목이라 하여 오른편에 모시어 7묘[廟]가 되며, 제후는 2소ㆍ2목으로 5묘, 대부는 1소 1목의 3묘가 된다. 소무【蘇武】한(漢)의 두릉(杜陵)사람. 한 무제(漢武帝)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절월(節鉞)을 갖고 흉노(匈奴)에게 사신 가 항복하라는 선우(單于)의 협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선우로부터, 큰 움 속에다 유치해 두고 음식을 주지 않거나 북해(北海)로 옮겨 양(羊)을 먹이게 하는 등 19년에 걸쳐 갖은 고초를 겪었으나 소무는 그때마다 모직물의 털을 뜯어 눈과 함께 씹어 먹거나 땅을 파 들쥐를 잡아먹는 등 모든 방법을 다 써가며 죽지 않고 한에서 가져간 절월이 다 닳도록 버티다가 소제(昭帝)가 즉위하여 흉노와 화친(和親)한 후 비로소 수염과 머리가 다 흰 몸으로 돌아왔음. 《漢書 蘇武傳》 소무간양【蘇武看羊】한 무제(漢武帝) 때 소무가 흉노(匈奴)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그들의 항복 권유에 굽히지 않으므로 끝내 북해(北海) 가에 안치되었는데, 흉노는 소무에게 그 곳에서 숫양[羝]을 기르게 하면서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한 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19년을 지낸 뒤, 한 소제(漢昭帝) 때에 흉노와 화친을 하게 되어, 한 나라에서 소무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하자, 흉노는 거짓으로 소무가 죽었다고 핑계대었다. 그러자 뒤에 한 나라 사신이 흉노에 가서 한인(漢人) 상혜(常惠)의 계책에 따라, 흉노 선우(單于)에게 “천자(天子)가 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을 하다가 기러기를 잡았는데, 기러기의 발목에 비단에 쓴 편지[帛書]가 매여 있었는바, 그 내용은 곧 소무 등이 아무 택중(澤中)에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함으로써, 마침내 소무가 한 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五十四》 소무내이대무외【小無內而大無外】“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고, 지극히 큰 것은 밖이 없다[至小無內 至大無外].”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소무서【蘇武書】한 나라 무제(武帝) 때 소무가 흉노(匈奴)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굴하지 않고 북해(北海)에 구금된 지 19년이 되었다. 흉노는 그가 이미 죽었다고 속였는데 본국에서 그것을 탐지해 알고 기러기 발에 글월을 매어 부쳐 소식을 통하여 왔고, 거짓말로 흉노를 힐책하여 돌려왔다. 소무설【蘇武雪】소무가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있다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면서 항복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다가 큰 구덩이 속에 갇혀서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해(北海)로 옮겨져서 양을 치며 지냈는데, 그때에도 한 나라의 절(節)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게 되어 비로소 한 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卷54 蘇武傳》 소무이릉【蘇武李陵】두 사람은 다 한 무제의 신하로, 소무는 흉노(匈奴)에게 사신갔다가 억류되었고, 이능은 흉노와 싸우다가 항복했는데, 두 사람은 흉노국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 뒤 한 소제(漢昭帝)가 흉노와 화친하자 소무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니. 이릉은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이별시를 지어 소무에게 주었다. “携手上河梁 游子暮何之 徘徊蹊路側 恨恨不得辭 晨風鳴北林 熠熠東南飛 浮雲日千里 安知我心悲” 소무도 이 능에게 다음과 같은 이별시를 지어 주었다. “雙鳧俱北飛 一鳧獨南翔 子當留斯舘 我當歸故鄕 一別如秦胡 會見何渠央 愴恨切中懷 不覺淚霑裳 願子長努力 言笑莫相忘”이상 시는 오언시(五言詩)의 조종이 되었다 함. 소무절【蘇武節】소무(蘇武)처럼 강직하고 절조 있는 인물을 오랑캐 땅에 사신으로 보내게 되었다는 말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소무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가서 약 19년 동안이나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한절(漢節)을 몸에 지니는 동안 절모(節旄)가 모두 너덜너덜해졌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漢書 卷54》 소무절모【蘇武節旄】소무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을 억류되어 있는 동안에 깃발이 다 모지라졌으며, 머리는 쑥대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소무가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있다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면서 항복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다가 큰 구덩이 속에 갇혀서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해(北海)로 옮겨져서 양을 치며 지냈는데, 그때에도 한 나라의 절(節)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게 되어 비로소 한 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卷54 蘇武傳》 소무탈신기【小巫奪神氣】미숙한 무당이 노련한 무당을 만나면 자신의 미숙함을 실망하여 띠를 뽑아[拔茅]버린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학문과 기예의 미숙한 자가 노련한 자를 보고는 자신에 대하여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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