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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蕭墻】소장은 병풍이다. 소장공【蘇長公】소동파(蘇東坡)를 가리킨다. 노소(老蘇)인 소순(蘇洵)의 장자인 동시에 문장 또한 백대의 종장(宗匠)이 된다는 뜻에서 당시에 그를 장공(長公)이라 부르고 그의 아우인 자유(子由) 소철(蘇轍)을 소공(少公)이라고 불렀다. 소장공【蘇長公】소장공(蘇長公)은 송(宋)의 소식(蘇軾)을 말하는데, 소식은 당(唐)의 허혼(許渾), 송의 구양수(歐陽脩) 등의 뒤를 이어 안휘성(安徽省) 부양현(阜陽縣) 서쪽에 위치한 서호(西湖)의 승경을 탐하여 자주 그곳에 가 놀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음. 소장공적벽【蘇長公赤壁】소동파(蘇東坡)가 칠월(七月) 16일에 적벽강(赤壁江)에 놀면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 소장지화【蕭墻之禍】소(蕭)는 숙(肅)의 뜻이고, 장(墻)은 병풍이라 하였는데, 화가 밖에서가 아니요, 안에서 일어남을 소장의 화라 이른다. 소장후【蕭張後】한(漢) 나라 고제(高帝)가 자기의 공신(功臣) 삼걸(三傑)에 한신(韓信)을 장량(張良), 소하(蕭何)에 뒤에 두어 셋째로 쳤다. 소재【蘇齋】소재는 조선조 문신 노수신(盧守愼)의 호. 자는 과회(寡悔). 그는 문장과 서예에 능하고 특히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깊어 주자학파에게 공격을 받았음. 저서에는 시강록(侍講錄)ㆍ소재집(蘇齋集)이 있음. 선조(宣祖)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음. 명종(明宗) 때 대윤(大尹)으로 몰리어 19년간의 유배생활을 하였음. 소재【所在】있는 곳. 소재【蘇齋】조선 시대 문신이며 학자인 노수신(盧守愼)의 호이다. 소재도량【消災道場】국난이 있을 때 그 재난이 소멸되기를 축원하기 위하여 마련한 도량. 소저【燒猪】돼지고기를 굽는다는 말임. 소식의 희답불인시(戲答佛印詩)에 “佛印燒猪待子瞻" 이라 하였음. 소전문【小篆文】유사(有史) 이전에 신(神)이 남겨 놓은 글인데, 현대 사람은 알지 못할 이상스러운 글자이므로 그것을 작은 전[小篆]이라고 부른다 한다. 소전유얼【小腆遺孽】여기서는 은(殷) 나라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을 이른 것임. 소절관영【笑絶冠纓】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니 갓끈이 끊어졌다. 사기(史記) 소정【蘇鄭】소세양(蘇世讓)과 정사룡(鄭士龍)을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이행(李荇)으로부터 대제학의 재목으로 인정을 받았다. 《燃藜室記述 別集 卷7 官職典故 大提學》 소정【蘇頲】자는 정석(廷碩). 당 현종(唐玄宗) 때 자미황문 평장사(紫微黃門平章事)를 지내고 허국공(許國公)에 봉해짐. 그는 문장에 능했음. 《唐書ㆍ瑯琊代醉編》 소제상관후【昭帝上官后】한(漢)나라 소제(昭帝)의 상관황후(上官皇后)는 그의 할아버지 상관걸(上官桀)과 아버지 안(安)이 국가에 죄를 짓고 죽었으나 황후는 곽광(霍光)의 외손녀이므로 그대로 황후로 있었다. 소조【蕭曹】소조(蕭曹)는 한 고조 때 상국(相國)을 지낸 소하(蕭何)와 혜제(惠帝) 때 소하의 뒤를 이어 역시 상국이 된 조참(曹參)을 말하는데, 모두 진 나라 말기에 패현(沛縣)의 관리로 있었다. 소조량평【蕭曹良平】모두 한 고조의 공신들로서 소하(蕭何)ㆍ조참(曹參)ㆍ장량(張良)ㆍ진평(陳平). 소종【蕭琮】소종은 후량 명제(後梁明帝)의 아들로서 명제가 죽은 뒤에 그 자리를 이었다가, 뒤에 수 문제(隋文帝)의 부름을 받고 입조(入朝)하여 거국공(莒國公)에 봉해짐으로써 후량은 끝내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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