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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蘇州】당(唐) 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호이다. 소주 자사(蘇州刺史)를 지내면서 혜정(惠政)을 베풀었고, 고결한 성품에 시가 또한 한담간원(閒澹簡遠)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도연명(陶淵明)과 병칭되어 도위(陶韋)라고 불렸는가 하면,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위소주집(韋蘇州集) 권6 감탄(感嘆)을 보면 상서(傷逝)ㆍ왕부평상회(往富平傷懷)ㆍ출환(出還)ㆍ동야(冬夜) 등 무려 19개의 소제목 아래 먼저 떠나간 부인을 추억하며 자신의 절절한 심경을 기막힌 시로 토로해 내고 있다. 소준【蘇峻】진 원제를 도와 공을 세우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되었는데, 성제(成帝) 때에 반역하여 관군(官軍)을 차례로 물리치고 임금을 석두성(石頭城)에 내쫓기까지 하였으나, 끝내 도간(陶侃) 등의 군대에게 패하여 죽었다. 《晉書 卷一百》 소중양【小重陽】중양절(重陽節)인 9월 9일의 다음날을 가리킨다. 소지【小至】동지(冬至) 하루 전날을 말한다. 소지【素志】순결하고 해맑은 마음. 소진【蘇秦】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주(周)나라의 도읍 낙양(洛陽) 사람. 근처의 귀곡(鬼谷)에 은거하던 수수께끼의 종횡가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배웠음. 따라서 소진이 죽은 뒤 연횡책(連橫策)을 펴 합종책을 깨뜨린 장의(張儀)와는 동문이 되는 셈. 제(齊)나라에서 살해됨. 소진【蘇秦】전국 시대 변사(辯士)로 합종(合從)을 주장하였는데, 본래 낙양(雒陽) 사람으로 귀곡(鬼谷)에 살고 있던 종횡가(縱橫家) 왕허(王詡)를 사사하였다. 집을 나가 유학한 지 몇 해 만에 크게 곤궁을 당하여 집에 돌아오니, 형제와 형수, 처첩들 모두 비웃었다. 이에 그는 다시 공부하여 육국(六國)을 연합하여 육국의 정승이 된 다음 집에 돌아오니, 집안 식구들이 모두 존경하여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소진은 크게 탄식하며 “이 한몸이 부귀하면 친척들도 두려워하고 빈천하면 천대하니 하물며 타인이겠는가. 만일 나에게 낙양의 좋은 농토 2경(頃)이 있었다면 나는 육국의 정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였다. 《史記 蘇秦傳》 소진왕【小秦王】당 태종(唐太宗)을 말함. 사패(詞牌)의 이름으로 곧 진왕의 소파진악(小破陣樂)이다. 송 나라 시인 진관(秦觀)이 말하기를 “근세에 또 노래하여 소진왕에 넣어 다시 양관곡(陽關曲) 속쌍조(屬雙調)라 이름했다.” 하였음. 여기서는 양관곡을 취하여 이별의 뜻으로 쓴 것임. 소진인폐구【蘇秦忍敝裘】전국(戰國) 시대 유세객(遊說客) 소진(蘇秦)이 처음 연횡설(連橫說)을 가지고 10여 차례나 글을 올려 진 혜왕(秦惠王)을 설득하였으나 그 말이 행해지지 않음으로써, 일찍이 집에서 입고 나간 검은 갖옷이 다 해지고 황금 백 근의 노자도 다 떨어진 채 초췌한 몰골로 고향에 돌아가자, 부모와 형수와 아내가 모두 그를 냉대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戰國策 秦上》 소착【疏鑿】우(禹)가 홍수(洪水)를 다스릴 적에 용문산(龍門山)을 파서 하수(河水)를 소통시켰다[疏鑿]. 소찬【素饌】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의 겸양의 말. 소찬【素餐】시위소찬(尸位素餐). 하는 일 없이 국록(國祿)만 축내는 것을 말한다. 소처【小妻】이 말은, “聽曲知寗戚 夷吾因小妻”라고 한 데 보임. 소사빈(蕭士贇)의 주에 열녀전(列女傳)을 인용했는데, 그에 의하면, “영척(寗戚)이 제 환공(齊桓公)에게 등용되기를 바랐으나 길이 없게 되자, 남의 하인이 되어 제 나라 동문(東門)에서 소의 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했는데, 마침 제 환공이 듣고 이상히 여겨 관중(管仲)을 시켜 맞아 오게 하였다. 관중이 맞으러 가니, 영척이, ‘浩浩乎白水’라 하니, 무슨 뜻인 줄을 몰라 5일을 조회하지 않고 근심을 했다. 그의 첩(妾)인 천(倩)이 그 말을 듣고, 일시(逸詩) 백수(白水) 편에, ‘浩浩白水 儵儵之魚 君來召我 我將安居 國亂未定 從我焉如’라 한 것을 인용, ‘영척이 제 나라에 등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니, 관중이 이를 듣고 기뻐하여 환공에게 말하니, 그를 등용했다.” 함. 여기서는 이 백의 시에 관중의 첩(妾)인 천(倩)을 아내[妻]라 한 것을 말함. 소처하기【蘇妻下機】전국 때 소진(蘇秦)이 집 떠나 돌아다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꾀죄죄한 행색으로 돌아오니, 그의 처가 베틀에서 내리지 않았다가 그 뒤에 다시 육국 정승[六國相]이 되어 돌아오니 온 집안이 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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