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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해지【循陔志】어버이를 봉양하면서 지내려 했다는 말이다. 가사가 없어진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해(南陔)의 보망시(補亡詩)에 “남쪽 섬돌을 따라 올라가, 난초 캐어 어버이께 바쳐 올리리.[循彼南陔 言采其蘭]”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순해환유채란편【循陔還有采蘭篇】어버이에 대한 봉양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가사가 없어져버린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해(南陔)의 시를 진(晉) 나라 속석(束晳)이 보완하여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남쪽 밭두둑 따라 난초를 캐네. 어버이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왜 이리 설레는지.[循彼南陔 言采其蘭 眷戀庭闈 心不遑安]”라고 하였다. 순화【順和】시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은 ‘그대로 화답한다.’는 뜻으로 ‘순화’라 하였다. 순회세자【順懷世子】순회세자는 명종(明宗)의 아들로, 명종 12년(155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호군(護軍) 윤옥(尹玉)의 딸과 가례(嘉禮)를 올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보지 못한 채, 계해년인 명종 18년(1563)에 13세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 순효일심절【舜孝一心切】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순 임금은, 아버지는 완악하고 후모(後母)는 어리석었으나, 능히 효도로써 화동케 하며 잘 다스려서, 간악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였다.”는 대목을 인용한 말이다. 순효칭봉인【純孝稱封人】봉인(封人)은 국경을 맡은 관직으로 춘추 시대 정(鄭)의 봉인 영고숙(穎考叔)을 가리킨다. 정 장공(鄭莊公)은 어머니 무강(武姜)과 사이가 나빴는데, 아우태숙단(太叔段)을 시켜 반란을 도모하자 장공은 “어머니와는 황천(黃泉)에서나 만나겠다.” 하고는 결별을 선언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영고숙은 장공을 찾아가 풍간하여 마침내 모자간의 정의를 되찾게 했으므로 군자들은 “영고숙은 순수한 효도이다. 그 어머니를 사랑하여 장공에게까지 미쳤다.[穎考叔 純孝也 愛其母 施及莊公]" 하였다. 《春秋左傳 隱公 元年》 술랑【述郞】신라 효소왕(孝昭王) 때의 화랑으로, 이른바 사선(四仙)의 하나이다. 남랑(南郞), 영랑(永郞), 안상(安詳)과 함께 총석정(叢石亭)에서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일포(三日浦)에는 ‘술랑도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석각(石刻)이 있다고 한다. 술수화룡신칭섭【術邃畫龍神稱葉】춘추 시대 초(楚) 나라 섭공 자고(葉公子高)가 용을 좋아하여 실내(室內)에다 여기저기 용을 그려 붙여 놓으니, 참으로 천룡(天龍)이 그 소문을 듣고 내려와 실내에까지 들어왔다는 고사이다. 즉 섭공의 그림 솜씨가 그처럼 신기했다는 말이다. 숭강【崇岡】시경(詩經) 주남(周南) 권이(卷耳)에 “저 높은 묏부리에 오르려 하나 내 검은 말이 병들어 누렇게 되었으니 내 우선 저 뿔잔에 술을 부어 길이 서글퍼 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숭고길보【嵩高吉甫】시전(詩傳)에 있는 숭고(嵩高)장을 말함이니, 윤길보(尹吉甫)가 지은 시로서 방숙(方叔)과 소호(召虎)의 무공을 찬양한 시이다. 숭구【嵩丘】중국 오악(五嶽) 가운데 중악(中嶽)으로 불리는 숭산임. 숭란【崇蘭】높은 지대에 나서 자란 난초를 말함. 숭문관【崇文館】숭문관(崇文館)은 위(魏) 나라 명제(明帝)가 글 잘하는 문사(文士)들을 모아서 거처시킨 집이다. 숭반【崇班】숭반은 고위 관원의 반열을 뜻한다. 숭백【崇伯】서경(書經) 순전(舜典)의, “백우가 사공이 되다[伯禹作司空].”에 대한 그 주에, ‘우(禹)가 곤(鯀)을 대신하여 숭백(崇伯)이 되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서 천자의 사공(司空)이 되어 홍수를 다스려 공이 있었다.’ 하였음. 숭산【嵩山】숭산은 중국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임. 숭선【嵩善】선산(善山)의 옛 이름이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고향이다. 숭숭【崇崇】높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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