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반악【潘岳】반악은 진(晉) 나라 중모(中牟) 사람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용모를 지녔으므로, 낙양(洛陽) 거리를 거닐면 부녀자들이 과일을 던지면서 유혹하였다 한다. 《晉書 卷五十五》 반악빈【潘岳鬢】반악(潘岳)은 진(晉) 나라의 문장가로, 인물이 잘나서 풍채 좋기로 유명하였는데, 그는 32세에 귀밑머리가 세기 시작하였다 한다. 그의 추흥부(秋興賦)에 “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는 말이 있다. 반악삼도원【潘岳三桃苑】반악은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안인(安仁). 일찍이 하양(河陽)의 원이 되어 곳곳에 복숭아를 심었다. 삼도(三桃)는 후도(候桃)ㆍ앵도(櫻桃)ㆍ호도(胡桃)를 말하는데 그의 한거부(閑居賦)에 “삼도는 앵도와 호도의 다른 종류를 표했다.” 하였다. 《晉書 潘岳傳》 반악여【潘岳輿】진(晉) 나라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모친을 가마에 모시고 수레에 태워, 멀리 기전(畿甸)을 유람하고 가까이는 집 뜰을 돌아다녔다.[太夫人乃御版輿 升輕軒 遠覽王畿 近周家園]”라는 구절이 있다. 반악한거배판여【潘岳閑居陪板輿】노모(老母)를 모시고 나들이를 간다는 말이다. 판여(板輿)는 노인용 가마를 뜻하는데, 진(晉) 나라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太夫人乃御板輿 升輕軒遠覽王畿 近周家園”이라는 구절이 있다. 반안인【潘安仁】진(晉) 나라 시인 반악(潘岳). 그의 자가 안인(安仁)이다. 하양현(河陽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다 도리(桃李)를 심었다. 반안현【潘安縣】반안현은 하양현의 별칭으로, 반악이 일찍이 하양의 현령이 되었는데, 반악의 자(字)가 안인(安仁)이었으므로, 이를 줄여서 반안이라고 하였으며, 드디어 하양현의 별칭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반앙【飯秧】모내기 할 때 밥을 제공하고 품삯을 그만큼 감하는 것을 밥모[飯秧]라고 하였음. 반야주이학【半夜舟移壑】만물의 변화를 주관하는 조물(造物)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라는 말이 있다. 반야학주이【半夜壑舟移】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골짜기 속에 배를 숨겨두고는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한밤중에 힘센 자가 등에 지고 달아나도 어리석은 사람은 알아채지를 못한다.[夫藏舟於壑 謂之固矣 然而夜半 有力者 負之而走 昧者不知也]”라고 하였다. 반양【潘楊】진(晉) 나라 때의 명사 반악(潘岳)이 양수(楊綏)의 고모에게 장가들었다는 것으로, 인척 관계에 있는 것을 뜻한다. 반양【班揚】후한(後漢) 때의 문장가인 반고(班固)와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인 양웅(揚雄)을 합칭한 말이다. 모두가 큰 문장들이다. 반양호【潘楊好】서로 인척(姻戚) 사이가 된 것을 비유한 말. 진(晉) 나라 때 반악(潘岳)의 아버지와 양중무(楊仲武)의 조부와의 사이는 일찍이 구교(舊交)가 있었는데, 또 반악의 아내는 바로 양중무의 고모였으므로, 반악이 양중무와 매우 친밀하게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