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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황초평(皇初平)이 나이 15세 때 양(羊)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도사(道士)가 그의 착실한 태도를 보고 그를 데리고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으로 들어갔다. 초평은 그곳에서 40여 년을 보내면서 집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를 찾아나선 그의 형이 몇 해를 두고도 못 찾다가 어느 날 시장에서 도사를 만나 그가 금화산 속에서 양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길로 도사를 따라가서 그를 만났다. 형이 초평에게,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 산 동편에 있다고 하여, 가 보았으나 양은 없고 하얀 돌무더기뿐이었다. 그런데 초평이 와서 꾸짖자 그 돌들이 모두 일어나 수만 마리의 양떼를 이루었다고 한다. 《神仙傳》 백석가【白石歌】백석가는 남산지가(南山之歌), 일명 우각지가(牛角之歌)라고도 한다. 춘추 시대 위(衛) 나라 사람 영척(甯戚)이 가난하여 제 환공(齊桓公)에게 벼슬을 얻으러 가서 소뿔을 두드리면서 불렀다 한다. 그 노래는 “남산은 환하며 백석은 빛나네.[南山粲粲 白石爛爛]" 로 시작한다. 《三齊略記》 백설【白雪】거문고 곡조의 이름. 그 설이 동일하지 않다. 사희일(謝希逸)의 금론(琴論)에는 “유연자(劉涓子)가 거문고를 잘 타서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을 지었다.” 하였고, 금집(琴集)에는, “사광(師曠)의 소작이라.” 하였으며, 박물지(博物志)에는, “태상(太常)이 소녀(素女)를 시켜 오십현(五十絃)의 비파를 타는 곡조 이름이라.” 하였다. 백설【白雪】백설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 도읍 영도(郢都)의 고아(高雅) 한 가곡(歌曲) 이름으로, 문선(文選)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이란 글에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을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 하였다. 백설【百舌】새 이름. 백로(伯勞)의 일종으로 일명은 반설(反舌)인데 종달새를 말함. 백설가【白雪歌】하리(下里)ㆍ파인(巴人)에 대칭되는 매우 품격이 높은 노래로, 곡조가 고상하여 예로부터 부르기 어려운 곡으로 꼽혀 온 초(楚) 나라의 가곡임. 지기지우끼리 시를 주고받을 때 흔히 상대방의 시를 찬양하는 뜻으로 인용된다. 백설곡【白雪曲】양춘곡(陽春曲)과 함께 꼽히는 초(楚) 나라의 2대 명곡으로 내용이 너무도 고상하여 예로부터 창화(唱和)하기 어려운 곡으로 일컬어져 온다. 전하여 상대방의 시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백설부【白雪賦】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 이름이다. 백설양춘【白雪陽春】남이 흉내내기 어려운 고상한 시가(詩歌)를 말한다. 백설과 양춘 모두 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가곡 이름으로, 이를 제대로 창화(唱和)하는 이가 수십 인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백설조【白雪調】거문고 곡명. 비추부(悲秋賦)로 유명한 초(楚)의 송옥(宋玉)이 쓴 송옥풍부(宋玉諷賦)에, “그 안에 거문고가 있기에 신(臣)이 그를 안고 뜯다가 유란곡(幽蘭曲)ㆍ백설곡(白雪曲)을 만들었지요.”라 하였다. 백설조【白雪操】고대의 유명한 금곡(琴曲) 이름인데, 곡이 너무 고상하여 창화(唱和)할 이가 극히 드물었으므로, 전하여 위인(偉人)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백설편【白雪篇】옛날에 고상하기로 유명했던 초(楚) 나라의 가곡인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에서 온 말로, 전하여 훌륭한 시문(詩文)에 비유한다. 백성【白城】충청도 직산(稷山)의 고호임. 백성가【百姓家】불교나 도교를 믿지 않는 평범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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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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