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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력【鳳曆】옛날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때에, 봉(鳳)새가 천시(天時)를 안다 하여 봉조씨(鳳鳥氏)로써 역정(曆正)을 삼았으므로, 세상에 기년(紀年)을 봉력(鳳曆)이라 한다. 봉련【鳳輦】임금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봉루【鳳樓】금중(禁中)에 설치한 아름다운 누각(樓閣)을 가리킨다. 봉류【封留】한 고조(漢高祖)가 개국공신 장량(張良)을 유후(留侯)에 봉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봉릉【鳳綾】당 현종(唐玄宗) 때 영왕(寧王)이 기왕(岐王)ㆍ설왕(薛王) 이하를 거느리고 주청(奏請)하여 승여(乘輿) 앞에 붓을 놓고 행재(行在)의 일을 적어 천보(天寶) 10년에 3백 권을 지어 바치니, 현종이 보고 자주[紫] 용봉릉(龍鳳陵)에 책 표제를 쓰게 하여 별각(別閣)에 두게 했다. 봉린노위【封隣魯衛】노(魯) 나라는 주공(周公)의 봉국(封國)이고 위(衛) 나라는 주공의 동생 강숙(康叔)의 봉국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노 나라와 위 나라의 정사는 마치 형제처럼 비슷하다.[魯衛之政 兄弟也]”라는 말이 있다. 봉마【蓬麻】봉생마중(蓬生麻中)의 준말. 봉마공장【蓬麻共長】다른 사람의 영향의 받아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 속에서 나면 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검은 흙 속에 있으면 저절로 검어진다.” 하였다. 봉마붕【蓬麻朋】그와 사귀게 되면 자연히 바르게 되는 친구를 말한다. “쑥이 삼대 밭에 나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아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荀子 勸學》 봉마토사상전도【蓬麻兎絲相顚倒】부부(夫婦)의 이별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신혼별(新婚別) 시에, “새삼 덩굴이 쑥대 삼을 타고 오르니, 이 때문에 덩굴이 길게 뻗지 못하네. 딸을 원정군에게 시집보내려거든, 차라리 길가에 버리는 게 나으리라[兎絲附蓬麻 引蔓故不長 嫁女與征夫 不如棄路傍].” 한 데서 온 말로, 새삼 덩굴은 본디 소나무나 잣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하찮은 쑥대와 삼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자랄 수가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7》 봉명전【奉明殿】민간 출신의 제왕(帝王)이 자기 친부모의 묘소를 개장하는 일을 말한다. 봉명전(奉明殿)은 한(漢) 나라 선제(宣帝)의 생부(生父)인 사황손(史皇孫)의 묘소가 봉명현(奉明縣)에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漢書 卷63ㆍ文選 卷10 西征賦 注》 봉명화【鳳鳴和】춘추(春秋)시대 때에 진경중(陳敬仲)이 제(齊) 나라에 망명하여 갔는데 의중(懿仲)이 그에게 딸을 주려고 점을 쳤더니 점괘에, “숫봉 암봉이 날아 화합하게 울음운다. 팔대(八代)를 지나면 더할 수 없이 높겠구나.” 하더니 과연 그 뒤에 그 자손이 제(齊) 나라 임금이 되었다. 봉모【鳳毛】봉황의 터럭 하나라는 말로, 부조(父祖)의 유풍(遺風)을 이어받은 걸출한 인물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진(晉) 나라 왕소(王劭)와 남조 제(齊)의 사초종(謝超宗)이 각각 환온(桓溫)과 제 무제(齊武帝)로부터 “봉모(鳳毛)를 확실히 이어받아 가지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던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容止ㆍ南齊書 卷36 謝超宗列傳》 봉모【鳳毛】자식이 아버지의 훌륭한 풍채를 닮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왕소(王邵)가 자기 아버지인 왕도(王導)의 풍채를 닮았는데, 그가 시중(侍中)이 되어 공복(公服)을 입고 들어오자, 환온(桓溫)이 그를 바라보고 말하기를 “원래 봉의 터럭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故自有鳳毛]”고 하며 찬탄을 했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容止》 봉목시성【蜂目豺聲】벌과 같은 눈, 승냥이 같은 소리. 흉악(凶惡)한 인상(印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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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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