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부생모육【父生母育】아버지가 낳고 어머니가 기름 부생원【桴生員】전체생원(傳遞生員). 할 일 없이 각 고을에 몰려다니며 수령들을 위협해서 민폐를 끼치는 양반들을 일컬음. 중종때 생원 윤양우(尹湯佑) 등이 벗들과 결탁하고 떼를 지어 지방 고을을 두루 돌아다니자, 수령들이 그들에게 비방당할까 두려워하여 영접과 위로를 극진하게 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부생원’이라고 한 것은 떼로 모여 횡행하기 때문에 부벌(桴筏)에 비유한 것이며, ‘전체생원’이라고 한 것은 각 고을에서 타고 싣는 말과 딸린 종들을 전체하여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부생유은【浮生有垠】장자(莊子)에, “생(生)은 가이 있고, 아는 것은 가이 없다[生也有涯 知也無涯].” 하였는데, 인생이 뿌리가 없이 뜬 것과 같다는 뜻이다. 부서【扶胥】광동성(廣東省) 번우현(番禺縣)의 바닷가에 있는 지명인데, 한유(韓愈)의 남해신묘비문(南海神廟碑文)에 ‘부서의 어귀 황목의 물굽이[扶胥之口 黃木之灣]’라는 말이 있으므로, 전하여 여기서는 남쪽 바다를 의미한다. 부서【腐鼠】부서는 천한 물건을 비유한 것임. 《莊子 秋水》 부서【賦芧】저공(狙公)이 도토리를 주는 숫자를 가지고 원숭이를 속인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를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고 수고를 하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조삼(朝三)이라고 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옛날에 저공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내었다. 이에 다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성내는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이 때문이다.” 하였다. 부서혁군【腐鼠嚇君】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의하면,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어 남해(南海)를 출발하여 북해(北海)로 날아갈 적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물이 나오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데, 이때 소리개는 썩은 쥐를 물고 있으면서 마침 그 위를 날아가는 원추를 보고는 제 썩은 쥐를 빼앗길까봐 꿱 하고 으르대었다는 고사가 있다. 부석【鳧舃】오리의 신발로 지방 수령을 고상하게 부르는 칭호임.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 왕교(王喬)에, “왕교는 하동(河東) 사람인데 현종(顯宗) 때 섭령(葉令)이 되었다. 왕교는 신술(神術)이 있어서 매달 삭망(朔望)에 대(臺)에 나와 조회하였다. 황제는 그가 자주 오는데도 수레가 보이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몰래 엿보게 하였다. 태사가 엿본 뒤에 왕교가 올 때 두 마리의 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온다고 하였다. 이에 오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물을 펴서 잡으니, 단지 신발 한 짝만 있었다. 상방(尙方)에 명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하니 전에 상서원(尙書院)의 관속들에게 하사한 신발이었다.” 하였다. 부석【鳧舃】지방관원의 행차를 이른 것. 후한(後漢)의 왕교(王喬)가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반드시 조정에 와 조회를 하고 갔는데 뒤따라 온 거기(車騎)도 없었다. 그를 이상히 여긴 황제는 태사(太史)에게 밀령을 내려 자세히 지켜보게 하였던 바, 그가 올 때쯤 해서 두 마리의 오리가 동남방에서 날아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 오리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그물을 던져 잡았더니 그물 속에는 오직 신발 한 짝이 있더라는 것이다. 《後漢書 方術傳》 부석임【傅錫任】玉樹로 가득찬 숲이라 함.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