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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負絏】말고삐를 잡는다는 뜻으로, 임금을 모시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左傳 僖公 二十四》 부설기기미【傅說騎箕尾】재상의 죽음을 말한다. 은(殷) 나라 무정(武丁)의 현상(賢相) 부열(傅說)이 죽어서 기미성(箕尾星) 위에 올라탔다는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莊子 大宗師》 부세【附勢】유자후가 처음에 왕비(王伾)와 왕숙문(王叔文)의 세력에 붙었다가 그들이 패하자 유자후가 귀양간 것을 말한다. 부소【膚訴】남을 참소하는 형용사임. 논어(論語) 안연(顔淵) 편에, “침윤(浸潤)의 참소와 부수(膚受)의 하소연이 행하지 아니하면 밝다[明]할 수 있느니라……”하였음. 부소【扶蘇】부소는 부여(扶餘)에 있었던 백제(百濟)의 옛 도성(都城)이다. 부소【扶蘇】진 시황(秦始皇)의 장자(長子)로 성품이 인자했으나, 시황의 노여움을 사, 북쪽으로 보내어 장군 몽염(蒙恬)의 군사를 감시하게 되었는데, 뒤에 이사(李斯)ㆍ조고(趙高)에 의하여 거짓 조칙(詔勅)으로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차자인 호해(胡亥)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이세(二世)였는데, 이사ㆍ조고 등의 폭정(暴政)으로 말미암아 진 나라는 곧 멸망하고 말았다. 《史記 秦始皇本紀》 부소산【扶蘇山】개성에 있는 산이다. 부소산【扶蘇山】부여현의 북쪽 3리에 있는 진산(鎭山) 이름이다. 부소산【扶蘇山】임천현의 아문이 있던 산 이름으로, 북쪽 절벽은 백제(百濟)가 나당 연합군(羅唐聯合軍)에 의해 멸망할 때 삼천 궁녀가 백마강(白馬江)에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落花巖)으로 유명하고, 남쪽에는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 등 세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삼충사(三忠詞)가 있다. 부송영【鳧送影】후한(後漢)의 왕교(王喬)가 섭(葉) 땅의 수령이 되었는데,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두 마리의 물오리를 타고 왔었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後漢書 方術傳上 王喬》 부수【斧繡】예전에 어사(御史)는 주로 탄핵하는 것을 담당하였으니, 지금의 감찰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는 임금이 수놓은 옷을 하사하고 관청에 나올 때에는 앞에 도끼를 들려가지고 감으로 부수(斧繡)라 한 것이다. 부수지소【膚受之愬】논어(論語)에, “젖어드는 참소와 살에 닿는 참소.[浸潤之譖 膚受之愬]”란 말이 있다. 부승구지초【負乘寇之招】주역(周易) 해괘(解卦) 육삼효사(六三爻辭)에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타면 도둑이 오게 된다.[負且乘 致寇至]” 한 데서 온 말인데, 짐을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고 수레를 타는 것은 군자의 일이므로, 소인이 분에 넘치게 수레를 타면 남의 질시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부승어【府丞魚】관리의 청렴함을 비유한 말. 후한 때 양속(羊續)이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있으면서 매우 검소한 생활로 선정(善政)을 베풀었는데, 한 번은 부승(府丞)이 생선을 갖다 바치므로, 양속이 이를 받아 뜰에 걸어놓았다가, 뒤에 부승이 또 생선을 바치자, 그때는 이전에 받은 생선을 가져다가 부승에게 보이어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三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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