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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北學】북쪽의 발달된 문명을 배우는 것. 북학【北學】주(周) 나라 때 서울에 설치하였던 최고 학부(學府) 가운데 하나로, 학부 내에는 동ㆍ서ㆍ남ㆍ북의 사학(四學)과 태학(太學)이 있었다고 한다. 북해【北海】공 북해(孔北海), 즉 북해 상(北海相)을 역임한 후한(後漢) 말의 문학가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당시에 금주령(禁酒令)을 내린 조조(曹操)에 반대하여 주덕(酒德)을 찬양하면서 “자리에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술통 속에 술이 비지 않는다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으랴.[座上客恒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조조의 미움을 받아 죽었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북해빈【北海賓】북해상(北海相)을 지낸 후한(後漢)공융(孔融)이 손님을 좋아하여 늘 말하기를, “자리에는 손님이 늘 가득하고 술독 속에 술만 바닥나지 않으면 내 다른 걱정은 없노라.” 하였다는 것이다. 《蒙求》 북해상휘【北海觴揮】북해는 후한(後漢) 때 북해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키는데, 그는 본디 빈객을 좋아하여 그가 한직(閑職)에 물러나 있을 적에는 빈객들이 날로 문에 그득하였으므로, 그가 항상 감탄하여 말하기를 “자리에는 빈객이 항상 그득하고, 항아리에는 술이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걱정이 없겠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북해준【北海樽】공북해(孔北海)는 한(漢) 나라 때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공융은 성품이 너그럽고 거리낌이 없었으며, 선비들을 좋아하였고 후생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였다. 한직(閑職)으로 물러난 다음에는 빈객들이 항상 집에 가득하였는데, 항상 말하기를, “좌상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주전자엔 술이 빌 때가 없으니,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後漢書 孔融傳》 북행【北行】명 나라에 조회하러 가는 사행길을 말한다. 북행【北行】나라에서 귀가(貴家) 자제(子弟)들을 천조(天朝)에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북황【北荒】북쪽 끝에 있는 황량하고 먼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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