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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아【豳雅】빈아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을 이르는데, 주례(周禮) 춘관(春官) 약장(籥章)에 의하면 “무릇 나라에서 신농씨(神農氏)에게 풍년을 기원할 적에는 빈아를 피리로 연주한다.” 하였다. 빈아【豳雅】시경(詩經)의 빈풍(豳風) 칠월편(七月篇)을 가리킴. 주(周) 나라의 선조 공유(公劉)가 빈(豳)에 살았는데,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할 때 공유의 풍화(風化)를 기록해서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였다. 빈양【賓暘】빈양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따로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니 그곳이 바로 해가 뜨는 양곡(暘谷)인데, 해가 떠오를 때 공손히 맞이하여[寅賓出日]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빈양【頻陽】빈양은 진(秦) 나라 장수 왕전(王翦)이 병을 이유로 물러나와 은퇴한 고을 이름이다. 《讀史方輿紀要 陜西 西安府 富平縣》 빈여사【鬢如絲】귀밑머리털이 실처럼 희게 변하다. 빈연배황궁【賓筵拜貺弓】임금이 유공(有功)한 제후(諸侯)에게 활을 준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 동궁(彤弓)에 “붉은 활을 갈무리해 놓았노니, 내 아름다운 손님이 있어 진심으로 준다.[彤弓弨兮 受言藏之 我有嘉賓 中心貺之]" 하였다. 빈왕【賓王】주역(周易) 관괘(觀卦)에, “나라에 관광(觀光)하여 왕에게 손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후세에는 이것을 과거 보는 선비에게 인용했다. 빈읍후량【豳邑餱糧】유랑 생활을 면치 못함. 후직(后稷)의 증손인 공유(公劉)가 하(夏)나라로부터 박해를 받고 빈(豳)을 찾아 떠날 때 마른 쌀[餱糧]을 전대ㆍ주머니 등에다 담아 가지고 길을 떠났는데, 그것이 뒤에 주실(周室)이 일어나게 된 발판이 되었음. 《詩經 大雅 公劉》 빈이낙도【貧而樂道】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긴다는 뜻으로, 몸은 곤궁하더라도 도를 닦아 즐기는 진정한 삶을 의미함. 빈이낙도 부이호례(貧而樂道 富而好禮)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함. 《論語》 빈이무원【貧而無怨】가난하나 원망하지 않음. 빈일【賓日】빈일은 돋는 해를 공경히 맞는 것으로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자세히 보인다. 빈자소인【貧者小人】가난한 자가 소인이 된다는 뜻으로, 가난하면 굽히는 일이 많아 굳은 지조나 절개가 없으면 소인이 되기 쉽다는 의미. 빈자일등【貧者一燈】가난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부처님에게 바친 등불 하나가 부귀한 사람들이 바친 만개의 등불보다 공덕이 크다는 뜻의 고사성어. 빈자일등【貧者一燈】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말로 부귀한 사람들의 호화로운 등불보다 성의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 정성의 소중함을 뜻한다. 빈종참담옹수의【賓從驂驔擁繡衣】복마(服馬)도 아닌 하찮은 곁말이 수놓은 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재능 없는 사람이 분수 밖의 은총을 입었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의사(義士) 노중련(魯仲連)이 맹상군(孟嘗君)에게 말하기를 “군(君)의 마구간에는 수놓은 옷을 입고 숙속(菽粟)을 먹지 않는 말이 없는데, 이들이 어찌 다 준마(駿馬)이겠는가.” 하였다. 《戰國策 齊策》 빈주【邠州】빈(邠)은 빈(豳)과 통하는데, 지금 섬서성(陝西省) 순읍현(栒邑縣)에 있는 곳으로 고대 주(周) 나라 선조 공류(公劉)가 빈국(豳國)을 세워 주 나라의 발상지가 되었다. 빈지여귀【賓至如歸】손님이 와서 마치 돌아온 것처럼 한다는 뜻으로, 손으로 온 것이 제 집에 돌아온 것처럼 조금의 불편도 없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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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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