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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호변【大人虎變】대인이 잘 변혁(變革)한다는 뜻. 주역(周易) 혁(革) 괘 구오효(九五爻)의 효사에, “大人虎變 未占有孚”라는 것이 보임. 대일【戴逸】대규의 일유. 진(晉)의 대규(戴逵)가 자는 안도(安道)인데 학문도 해박하고 문장도 능한 데다 글씨와 그림도 일가를 이루었고 또 거문고를 잘 타서 당시 성명이 자자했다. 무릉왕 희(武陵王晞)가 그의 거문고 솜씨를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자, 그는 그 사자(使者)가 보는 앞에서 거문고를 부수고 끝까지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음. 《晉書 陰逸戴逵傳》 대일통【大一統】천하의 제후국 모두가 중국 황제에게 복속되어, 그 문물과 제도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원년 첫머리에 ‘원년 춘 왕정월(元年春王正月)’이라고 하였는데, 정월 앞에 왕(王) 자를 넣은 것에 대해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대일통(大一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대자대비【大慈大悲】게 사랑하고 크게 슬퍼하는 마음. 넓고 커서 가이없는 사랑. 특히 관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고불쌍히 여기는 마음. 대자석【代赭石】대현(代縣)에서 생산되는 적철광(赤鐵鑛)의 일종이니, 농토에 퇴비를 주지 않아서 빨갛게 산화한 것을 말한다. 대작전가【大嚼塡街】하사한 진수(珍需)를 보자 마을 사람들이 맨입을 씹으며 부러워한다는 뜻.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오질(吳質)에게 보낸 편지에 “도수장을 지나면서 크게 씹어보니[過屠門而大嚼] 비록 고기는 얻어먹지 못하여도 마음은 쾌하다[雖不得肉貴目快意]"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대장【代匠】노자(老子) 74에 “죽이는 일을 맡은 자가 죽이게 마련인데, 죽이는 일을 맡은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것은 마치 대장을 대신해서 나무를 찍는 것과 같다. 만약 대장을 대신해서 나무를 찍게 된다면 그 손을 다치지 않을 자가 드물다.” 했다. 대장【臺長】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이하 지평(持平)까지와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臺司諫) 이하 정언(正言)까지의 모든 관원을 이르는 말. 대장거【大章車】길의 이정(里程)을 알리는 수레이다. 고금주(古今注) 여복(輿服)에 “수레 위에 상ㆍ하 두 층을 만들고 층마다 목인(木人)을 두어서, 1리를 가면 하층에서 북을 치고 10리를 가면 상층에서 징을 울린다.” 했다. 대장경【大藏經】석가모니가 돌아간 뒤에, 제자들이 그가 설법(說法)한 것을 경(經)ㆍ율(律)로 나누어 엮은 데다 또 경을 주석한 논(論)을 합쳐서 삼경(三經)이라 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모든 진리가 쌓이고 간직되어 있어 마치 큰 곳간[大藏]과 같다는 뜻에서 장경(藏經) 또는 대장경이라 하는 것이다. 대장군【大將軍】옛날, 고급 무관의 명칭. 고위장성. 대재소용【大材小用】큰 재목(材木)이 작게 쓰이고 있다.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됨을 뜻한다. 역설적으로 큰 재목은 큰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로도 쓰인다. 대저용약【代邸龍躍】한 문제(漢文帝)가 고조(高祖)의 중자(中子)로서 일찍이 대왕(代王)에 봉해져 있다가, 여 태후(呂太后) 일족이 몰락한 뒤에 진평(陳平)ㆍ주발(周勃) 등 대신들의 곡진한 요청에 의해 대저(代邸)를 떠나 제위(帝位)에 올랐던 것을 말한다. 《史記 孝文帝紀》 대전【大全】오경사서대전(五經四書大全)의 약칭. 명 성조(明成祖)는 영락(永樂) 12년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 호광(胡廣) 등에게 명하여 사서 오경을 다시 정리하여 대전을 편찬하게 하였으므로 영락대전(永樂大全)이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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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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