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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요미【德耀眉】덕요(德耀)는 후한 때 사람 양홍(梁鴻)의 처 맹광(孟光)의 자. 덕요는 얼굴이 아주 추했으나, 양홍을 아주 지성으로 섬겼는데, 밥상을 올릴 때 항상 눈썹 높이로 들었다 한다. 《後漢書 卷八十三 梁鴻傳》 덕용【德用】심명세(沈明世)의 자(字)이다. 택당의 처남 덕우【德雨】박황(朴潢)의 자(字)이다. 덕우【德祐】송 공제(宋恭帝)의 연호. 덕운【德雲】덕운비구(德雲比丘)의 준말로, 고승(高僧)을 이르는 말이다. 일명 선재동자(善財童子)로도 불림. 일찍이 53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뵙고, 맨 나중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만나서 십대원(十大願)을 듣고 아미타불국토(阿彌陀佛國土)에 왕생하였다는 구도자(求道者)이다. 덕운【德雲】화엄경(華嚴經)에 “善財童子問法於德雲比丘" 라 하였는데 이 덕운은 요원(了元)을 말함. 소식 시의 주에 의하면 불인선사(佛印禪師)의 이름이 요원인데 금산사(金山寺)의 주지로 있을 때 동파가 옥대(玉帶)를 남겨 산문(山門)을 지키게 하니 요원은 납군(衲裙)으로 보답하였다고 한다. 덕위원【德爲元】천도(天道)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은 사시(四時)의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과 통하는바, 원은 봄에 해당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덕유역거【德輶易擧】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덕이 가볍기가 털과 같으나 그를 들어 그대로 행하는 이는 적네.[德輶如毛 民鮮克擧之]”하였음. 덕음【德音】백성에게 은덕을 펴는 교서(敎書)나 명령. 덕이불견대평년【德彝不見大平年】당 태종(唐太宗)이 처음 나라를 다스릴 방침을 세울 때에 여러 신하와 의논하였더니, 위징(魏徵)은 인의(仁義)로, 봉덕이(封德彝)는 형법(刑法)으로 정치를 하기를 주장하였다. 태종(太宗)은 위징의 말대로 인의(仁義)로써 정치를 하여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으며 봉덕이는 이미 죽었었다. 태종은, “지금 천하가 이렇게 태평한 것은 위징의 힘인데, 봉덕이에게 오늘날 이것을 보게 하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 하였다. 덕인【德人】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가리킨다. 덕작달존【德爵達尊】달존은 누구나 모두 존경한다는 뜻으로 덕과 지위가 높음을 말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천하에 세 가지 달존이 있으니 벼슬이 높은 사람, 덕이 높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덕장【德璋】남조(南朝) 제(齊)의 공치규(孔稚珪)의 자. 은거생활을 떠나 벼슬길로 나간 벗 주옹(周顒)을 풍자한 북산이문(北山移文)의 작가. 덕형【德馨】서경(書經)에, “서직(黍稷)의 음식이 향기로움이 아니라 덕이 향기롭다.” 하였다. 덕혜봉재진【德慧逢災疹】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덕혜(德慧)와 술지(術知)가 있는 자는 항상 진질(疢疾)이 있느니라.” 한 데서 온 말인데, 덕혜는 총혜한 덕을 말하고, 재진은 재환(災患)을 뜻한다. 《孟子 盡心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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