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도곡다【陶穀茶】송나라 도곡(陶穀)이 눈 오는 날에 미인을 데리고 눈물[雪水]에 차를 다려 마시는데 미인은 전 당태위(黨太尉)집에 있던 사람이었다. 묻기를, “당태위도 이런 운치를 알던가.” 하니, 미인은, “그는 비단 장막 안에서 고아주(羔兒酒)를 마시면서 우리들더러 나직히 노래 부르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도공다【陶公茶】도곡(陶穀)이 눈오는 날에 눈물에 차를 다려 먹었다. 도공사【陶公梭】도공은 도간(陶侃)을 말하고 북은 용(龍)이라는 뜻. 진서(晉書) 권16에 “도간이 젊었을 때 뇌택(雷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북[梭] 하나가 그물에 걸려나왔으므로 벽에 걸어 놓았더니, 조금 있다가 우레치고 비가 쏟아지면서 용으로 변하여 갔다.” 하였다. 도공석【陶公石】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이 술에 취하면 눕곤 하여 그 흔적이 남았다는 이른바 ‘연명 취석(淵明醉石)’이 여산(廬山)에 있다고 한다. 《朱子語類 卷138》 도공진의【陶公眞意】도공은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의 음주(飮酒) 20수(首) 중 제5수에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 날 저물자 산 기운 더욱 좋아져, 날던 새도 서로들 어울려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된 뜻이 들어 있나니, 설명하려 하다가도 어느덧 말을 잊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라는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3》 도공희공【逃空喜跫】외로운 처지에서 친지의 방문을 받거나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夫逃虛空者 …… 聞人足音 跫然而喜矣”라고 하였다. 도공희족음【逃空喜足音】외진 곳에 사는 사람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쁘다는 뜻으로 덕장 스님이 찾아와 작자에게 인사로 한 말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빈 골짜기에 도망쳐 사는 사람이 잡초가 길을 덮은 그곳에 오래 사노라면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쁜 법이다.” 하였다. 도관【道觀】도관은 도교(道敎)의 사원(寺院)을 가리키는데, 도교에서 성단(星壇)을 두고 성신을 제사 지낸다. 도관【都官】한(漢) 나라 때 사예교위(司隷校尉)의 속관(屬官)이었다. 도관무호시【都官無好詩】당나라 시인 정곡(鄭谷)이 눈[雪]을 두고 지은 시에, “강 위에 저녁 때 그림 그릴 만한 곳은 어옹이 한 도롱이를 입고 돌아간다 [江上晩來堪畵處 漁翁披得一簑歸].”는 구(句)가 있다. 정곡의 벼슬이 도관(都官)이었다. 도구【屠狗】옛날에 연(燕) 나라 지방에는 기절이 있는 협객(俠客)이 많았는데, 그들이 때를 만나지 못할 때에는 개 잡는 천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았다. 도구【陶句】진(晉) 나라 때의 고사(高士) 도잠(陶潛)의 시구를 가리킨다. 도구【菟裘】원래는 노(魯) 나라 읍명(邑名)인데, 노나라 은공(隱公)이 이곳에 은거하였으므로, 전하여 관직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보내는 곳의 뜻으로 쓰인다. 노은공(魯隱公)이 말하기를, “도구에 별장(別莊)을 경영하라. 내 장차 거기에 가서 늙으리.” 하였다 한다. 《左傳 隱公 十一年》 도군【道君】곧 휘종인데, 휘종이 도교(道敎)를 숭상하므로 휘종의 생전에 전위(傳位)를 받은 흠종(欽宗)이 휘종에게 교주도군황제(敎主道君皇帝)란 존호(尊號)를 올리었다. 도군【道君】송 나라 도군은 송 나라의 휘종(徽宗)을 가리킨다. 휘종은 도군 황제(道君皇帝)라고 자칭하였으며, 그림을 잘 그렸다. 도군【道君】송(宋) 나라 휘종(徽宗)의 별칭. 소흥(紹興) 5년(1135)에 금(金)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오국성(五國城)에서 객사하였다. 도군지주【陶君止酒】진(晉)의 도잠(陶潛)이 음주(飮酒)라는 제목으로 시(詩) 20수를 쓰고, 그 다음에 지주(止酒)라는 제목으로 술을 끊어야겠다는 내용의 시를 썼음. 《陶淵明集 卷三》
05/10/15/20/25/30/35/40/45/50/55/60/65/70/75/80/85/9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