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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陶舍】도사(陶舍)는 도연명의 집이다. 진(晉) 나라 도잠(陶潛)이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었다. 《晉書 卷 94 陶潛傳》 도사【陶謝】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과 남조 송(宋)의 사영운(謝靈運)을 병칭한 말이다. 각각 전원시(田園詩)와 산수시(山水詩)에 능하여, 자연의 경물 묘사에 최고의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도삭【度索】동해 바다 속에 있다는 전설상의 섬 이름. 한(漢) 나라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난룡(亂龍)에 “상고 시대에 귀신을 잘 잡는 신도(神荼)와 울루(鬱壘) 형제가 이 산 위의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서 귀신들을 검열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도삭반도【度索蟠桃】창해(滄海) 속에 도색산(度索山)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큰 복숭아나무가 있어 반도가 열린다고 한다. 반도는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로, 삼천 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山海經》 도산【嵞山】도산(塗山)과 같다. 도산의 소재지에 대해서는 설이 여러 가지다. 첫째는 사천파현(四川巴縣)에 있다는 설인데 촉전(蜀典) 권2, 도산씨강주 조(塗山氏江州條)에 보인다. 둘째는 안휘성(安徽省) 회원현(懷遠縣)에 있다는 것으로 노사(路史), 후기십이(後紀十二) 주(注)와 청(淸) 일통지(一統志)에 보인다. 신화적 관점에서 논하자면 월(越)의 회계(會稽) 월절서(越絶書) 외전기지(外傳記地)에 있다는 설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우에게 상서로운 징조를 보여주었던 구미호(九尾狐)가 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산【陶山】송(宋) 육전(陸佃)의 호. 도산【塗山】수춘현(壽春縣)의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하우(夏禹)가 이곳에다 제후들을 집합시키자 옥과 비단을 폐백으로 가지고 온 자가 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도산【道山】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을 말한다. 도산【陶山】퇴계 이황을 말함. 도산【塗山】하우씨(夏禹氏)의 후비임. 그가 도산씨(塗山氏)의 딸이었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도산로【陶山老】퇴계 이황을 말함. 도산사일침루경【塗山四日寢屢驚】장가들어 아내를 맞아온 기간.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내 도산으로 장가들어 신ㆍ임ㆍ계ㆍ갑(辛壬癸甲)을 지냈으며” 운운했는데, 이는 우(禹)가 치수(治水)에 바빠 신일(辛日)에 도산으로 장가갔다가 그로부터 사흘 후인 갑일(甲日)에 서둘러 돌아와 다시 치수의 일에 나섰음을 말한 것임. 도산서당【陶山書堂】경상도 안동에 있는 퇴계의 서재이다. 다음의 암서헌에서 부용봉까지는 모두 그 부 속 건물이나 혹은 부근 산천(山川)들이다. 도산씨【塗山氏】우(禹) 임금이 일찍이 도산씨(塗山氏)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도산지회【嵞山之會】도산은 회계산(會稽山)으로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에 있다. 옛날 우(禹) 임금은 제후들을 도산에서 모으니, 폐백을 갖고 온 나라가 만(萬)이나 되었으며, 회계산에서 여러 신에게 제사하였다. 《春秋左傳 哀公七年, 國語 魯語》 도상림【禱桑林】은(殷)나라의 탕(湯)이 7년 대한(大旱)에 큰 가뭄 때에 상림에서 기우제 지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상문우【道上問牛】정승의 직책을 가리키는 말. 한(漢) 나라 승상(丞相) 병길(丙吉)이 되어 길을 갈 때 사람 죽은 것을 보고는 아무 말을 않더니, 어떤 사람이 소를 쫓아가는데 소가 헐떡이며 혀를 내뽑는 것을 보고 하인을 시켜, “소를 몇 리나 쫓아왔느냐.” 물어보았다. 옆의 사람이 그까짓 것은 왜 묻느냐고 하자 “사람이 죽은 것은 경조윤(京兆尹)이 걱정할 일이요, 삼공(三公)은 음양(陰陽)의 조화(調和)함을 맡았으니 지금 보니까 소가 헐떡이니 혹시 음양이 고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물었노라.” 하였다 한다. 《漢書 丙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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