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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長勤】오랜 고생. 허덕임. 장금수【腸錦繡】시와 글을 잘함. “비단 창자에 수 놓은 배[錦膓繡肚].” 장급사【張給事】장급사는 곧 장현소(張玄素)를 말한다. 당 태종(唐太宗) 때 장현소가 시어사(侍御史)를 거쳐 급사중(給事中)으로 있으면서 태종이 낙양궁(洛陽宮)을 수축하려는 데 대해 현소가 상서(上書)하여 극간하자 태종이 그 일을 즉각 중지하였다. 《唐書 卷一百三》 장기론【張機論】의서(醫書)를 이름. 동한(東漢) 영제(靈帝) 때의 장기(張機)는 자가 중경(仲景)이었는데, 자기 일가들이 당시 상한병(傷寒病)으로 많이 죽어갔기 때문에 의학을 전공하여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세상에 내놓았음. 《四庫提要 卷一百三》 장길【長吉】장길은 당(唐)의 문장 이하(李賀)의 자. 그는 문장이 매우 훌륭하였다. 하루는 낮에 한 붉은 비단옷 입은 사람이 나타나 상제(上帝)가 백옥루(白玉樓)를 짓고 자네를 불러 기문(記文)을 지으려 한다 하였는데, 꿈을 깬 후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唐書 卷二百二 李賀傳》 장길문장【長吉文章】장길은 당(唐) 나라 시인(詩人) 이하(李賀)의 자이다. 그는 종실(宗室)인 정왕(鄭王)의 후예로 시가(詩歌)를 짓는 솜씨가 매우 민첩하고 문체(文體)가 독특하여 장길체(長吉體)를 창출한 사람이기도 하다. 악부사(樂府詞)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24세의 나이로 죽었다. 《舊唐書 卷一百三十七 李賀列傳》 장길통미【長吉通眉】장길은 당 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자인데 두 눈썹이 맞닿았음. 《唐書李賀傳》 장낙【長樂】장락은 한(漢) 나라 때 태후(太后)가 거처했던 궁전 이름이다. 장남헌【張南軒】송(宋) 나라 사람. 이름은 식(栻), 자는 경부(敬夫), 남헌은 호이다. 이학(理學)에 전심하였으며 주자와 교류하였음. 저서에는 남헌역설(南軒易說)ㆍ남헌집(南軒集) 등이 있음. 《宋史ㆍ宋元學案》 장년삼노【長年三老】주사(舟師), 뱃사공을 가리키는데, 혹은 사공을 장년, 노젓는 사람을 삼로라 하기도 한다. 장녹미인연일제【張祿微仁戀一綈】남에게 조그마한 은혜를 입고 그에 보답한 것을 말한다. 장녹(張祿)은 전국 시대 진(秦) 나라 정승 범수(范睢)의 가명이다. 범수가 처음에 위(魏) 나라에서 태중대부(太中大夫) 수가(須賈)를 섬겼는데, 범수가 수가로부터 어떤 일로 오해를 받아 그로 인해 매를 맞아 갈빗대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다. 범수는 곧바로 몰래 도망하여 성명을 장녹(張祿)으로 고치고 진 나라에 들어가 정승이 되었는데, 수가는 범수가 죽은 줄로만 알았었다. 뒤에 진군(秦君)이 위 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수가는 사신의 자격으로 진 나라에 갔는데, 범수가 그 소문을 듣고 일부러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미행하여 수가의 사관(使館)으로 찾아가니, 수가가 범수를 보고 깜짝 반기며 범수의 옷차림을 보고 추울 거라 생각하여 제포(綈袍) 한 벌을 내주었다. 그러자 범수는 그곳을 나와 상부(相府)로 들어가서 정승의 의용(儀容)을 갖추고 앉아 있었다. 수가는 범수가 진의 정승이라는 것을 그때야 알아채고 범수의 앞으로 나가 사죄하자 범수가 말하기를 “그대의 죄가 세 가지나 되지만 살려주는 것은 나에게 제포 한 벌을 주는 데에 친구의 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였다. 《史記 卷七十九 范睢傳》 장니【障泥】장니는 말[馬]의 배를 덮어 흙이 튀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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