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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掌珠】손 위의 구슬. 남의 자녀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장주【長洲】장원(莊苑)의 이름으로, 합려(闔廬)가 사냥하면서 놀던 곳이다. 장주【藏舟】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거물을 못에 감춰 두면 누구나 다 견고하다 하겠다. 그러나 힘 있는 자가 밤중에 짊어져 가는데,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한 데서 인용된 말. 장주【莊周】춘추 시대 송(宋) 나라의 사상가이자 도학자(道學者).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을 주창, 인생은 사생(死生)을 초월하여 절대 무한의 경지에 소요(逍遙)함을 목적으로 하였고, 또 인생은 모두 천명(天命)이라는 숙명설(宿命說)을 주장하였음. 장주【長洲】황해도 장연(長淵)을 가리킨다. 장주류생주【莊周柳生肘】버들[柳]은 곧 종기를 뜻하는데, 장자(莊子) 지락(至樂)의 “버들이 왼팔에 났다.[柳生其左肘]" 한 주에 “유(柳)는 유(瘤)와 같다.”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秋水》 장주지몽【莊周之夢】장주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실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는 고사.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중울【張仲蔚】장중울(張仲蔚)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같은 고을의 위경경(魏景卿)과 함께 몸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는데, 박학다식하여 천문(天文)에 정통하고 시부(詩賦)에 능했다 한다. 그런데 늘 빈한하게 사는 그 집에 사람의 키를 넘을 정도로 쑥대가 우거졌으므로 “중울봉호(仲蔚蓬蒿)”라는 몽구(蒙求)의 표제가 전해 온다. 《高士傳 中 張仲蔚》 장중주【掌中珠】손에 쥔 구슬이란 뜻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비유한 말이다. 장지【張芝】한(漢) 나라 사람. 장(張)은 비백(飛白), 특히 초서(草書)를 잘 써 초성(草聖)이라 일컬었다. 장지【張摯】한(漢) 나라 장석지(張釋之)의 아들로, 대부(大夫) 벼슬에 이르러 면직된 뒤, 강직한 성품을 굽히지 않은 채 종신토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史記 卷102》 후대에 세상에 아부하지 않는 사람의 대명사로 그의 자(字) 장공(長公)이 자주 쓰인다. 장지국【張持國】지국은 장유(張維)의 자이다. 장지화【張志和】산수화(山水畵) 잘 그리는 화가. 당(唐)의 장지화(張志和)의 어릴적 이름은 귀령(龜齡)이었는데, 나이 16세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고 숙종(肅宗)으로부터 총애를 받으면서 지화(志和)라는 이름을 왕에게서 받았고,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안진경(顔眞卿)과 친했다. 《唐書 卷一百九十六 隱逸》ㆍ《畵史》 장진【藏眞】당 나라 승(僧)인데 초성(草聖)으로 유명하였으며 호는 회소(懷素)임. 장진응참양졸구【張陣應慚養卒口】장진은 장이(張耳)ㆍ진여(陳餘)를 가리키며 양졸(養卒)은 나무와 밥의 천역(賤役)을 맡은 시양졸(廝養卒). 진(秦) 나라 말기 군사를 일으켜 조왕(趙王)을 세웠던 장이ㆍ진여가 연(燕) 나라에 조왕이 잡혀가자 걱정하니, 시양졸 하나가 나서서 연 나라 장군을 만나 설득하여 돌아오게 하였다. 장진응참양졸구【張陳應慙養卒口】진(秦)나라 말기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조왕(趙王)이 연왕(燕王)에게 잡히니, 그의 신하 장이(張耳)와 진여(陳餘)가 사람을 여러 번 보내어 조왕을 돌려주기를 청하였으나 연왕이 듣지 않았다. 말 기르는 종이 몰래 연왕에게 가서 구변(口辯)으로 달래어 조왕을 모시고 돌아왔다. 장진주【將進酒】당나라 이하(李賀)는 이름 높은 시인(詩人)인데 장진주(將進酒)란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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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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