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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朝海】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제후가 마치 천자를 뵙듯 강한의 물이 바다로 흘러든다.[江漢朝宗于海]”라는 말이 있다. 조해【調諧】조화(調和)와 같음. 조해소경【鳥駭巢傾】가족 전체가 화를 당할까 염려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공융(孔融)이 조조(曹操)에게 체포당했을 때, 7세 된 딸과 9세 된 아들이 태연히 바둑을 두면서 “둥지가 부서졌는데 새 알이 깨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安有巢毁而卵不破乎]”하고 스스로 각오했다는 소경란파(巢傾卵破)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孔融傳》 조핵요기【棗核療飢】대추씨로 요기한다는 말은 곧 후한(後漢) 때 방술사(方術士)인 학맹절(郝孟節)이 대추씨만 입에 머금은 채, 밥을 먹지 않고도 5년, 10년을 지낼 수 있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八十二》 조혁금액【鞗革金厄】조혁은 고삐의 머리를 가죽으로 꾸민 것이요, 액(厄)은 액(軛)과 통하는데, 수레 횡목(衡木)의 두 끝을 이름. 금으로 액한다는 것은 즉 그것을 금으로 장식한다는 말임. 주자 집주에는, “鞗革 轡首也 金厄 以金爲環 纑搤轡首也”라 하였음. 조현백【嘲玄白】시류(時流)에 영합하지 않고 담백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문필 작업에 열정을 쏟겠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집필하면서 담백한 생활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권세에 아부하여 출세한 자들이 “아직도 완전히 검어지지 않고 흰 부분이 있어서 출세하지 못한다.[玄尙白]”고 조롱하자, 해조(解嘲)를 지어 스스로 해명했다고 한다. 《漢書 揚雄傳下》 조협명리【兆協明离】황태자의 책봉을 칭송한 말이다. 주역(周易) 이괘(離卦)의 상(象)에 “밝음 두 개가 이괘를 이루나니, 대인이 이로써 밝음을 이어 받아 사방을 비추느니라.[明兩作离 大人以繼明 照于四方]”하였는데, 여기에서 명리(明离)가 황태자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 조호【雕胡】줄[菰]의 열매인 고미(菰米)를 말하는데, 식용(食用)으로 쓴다. 조호미【雕胡米】구황(救荒) 식물로 많이 먹었던 고미(苽米) 즉 줄풀의 열매를 말한다. 조화소아【造化小兒】고칠 수 없는 중한 병을 말한다. 아이란 곧 병마(病魔)의 뜻이다. 춘추 시대 진 경공(晉景公)이 병들었을 때, 두 아이[二豎子]가 고황(膏肓)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는데, 그 후 의원을 데려왔으나 의원은 병이 고황에 들어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左傳 成公 十年》 조화입노추【造化入爐槌】노추는 쇠붙이를 달구고 두들기는 기구로 곧 인간의 만사가 도야(陶冶)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말한 것이다. 조황옹【釣璜翁】강태공이 반계(磻溪 璜河)에서 낚시질하고 있었는데, 뒤에 무왕(武王)에게 발탁되었다. 《呂氏春秋》 조황후【趙皇后】요여조황후(腰如趙皇后). 전한(前漢) 때 효성제(孝成帝)의 황후(皇后)이던 조비연(趙飛燕)을 이름이니, 그는 몸이 가볍고 가무(歌舞)를 잘하였는데 그 모양이 마치 나는 제비[飛燕] 같았다고 한다. 그는 귀풍송원곡(歸風送遠曲)을 손수 지어서 노래하고 춤춘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 귀풍송원이란 회오리바람을 멀리 보낸다는 뜻이다. 조회【曹鄶】조(曹)와 회(鄶)는 주 나라 초기에 봉해진 나라들로서 춘추 시대 제후국 중 가장 빈약한 나라들임. 시경에 조풍(曹風)ㆍ회풍(鄶風)이 남아 있다. 좌전(左傳) 양공(襄公) 29에 “계찰(季札)이 회(鄶)ㆍ조(曹) 두 나라의 가요에 대해서는 평론이 없었다.” 한 주에 “계찰이 두 나라의 가요를 듣고 너무나도 미약하고 보잘것이 없어서 평론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였다. 조회【藻繪】조회(藻繪)는 문채(文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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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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