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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正葩】시경(詩經)의 시를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시경의 시야말로 바르면서도 아름답다.[詩正而葩]”라는 말이 있다. 정팽제언【鼎烹齊偃】제언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제(齊) 나라 주보언(主父偃)을 말함. 주보언은 처음에 종횡술(縱橫術)을 배우다가 나중에 주역(周易)ㆍ춘추(春秋) 등을 배운 학자로서 무제 때에 한 번의 상서(上書)로 인하여 한 해에 네 번 승천하여 중대부(中大夫)가 되고 이어 국사를 전횡한 것이 많았다. 그러자 혹자가 전횡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니, 주보언이 대답하기를 “장부가 살아서 오정식(五鼎食)을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오정에 삶아져 죽을 뿐이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주보언은 끝내 죄를 얻어 멸족을 당하고 말았다. 《史記 卷一百十二》 정평【正平】정평은 후한 말 고사(高士)로 이름난 미형(禰衡)의 자이다. 공융(孔融)이 조조(曹操)에게 천거하였으나 천성이 강직하여 아부하지 않자, 조조는 그를 형주 자사(荊州刺使) 유표에게 보내버렸고 유표는 또 강하 태수(江夏太守)황조(黃祖)에게 보냈는데, 결국 황조에게 죽고 말았다. 《後漢書 卷八十下 禰衡傳》 정포【鄭圃】옛날 열자(列子)가 살던 곳으로, 곧 현자(賢者)가 사는 곳을 말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열자가 정포에 40년 동안이나 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였다. 정포객【鄭圃客】정포의 나그네는 춘추시대 열자(列子)가 정 나라의 들밭에서 40년 동안 은거하였다 하여 그를 가리킨다. 정포은【鄭圃隱】포은은 정몽주(鄭夢周)의 호이다. 정몽주는 명 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갔었다. 우왕(禑王) 1년에 정몽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왜구(倭寇)의 침입을 금지시켜 줄 것을 교섭하였는데, 그때 사신다운 풍채가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매우 존경하였다고 한다. 정풍파【定風波】신라 옥적(玉笛)이 ‘만파식곡(萬波息曲)’이었는데, 이 적을 불면 외국의 군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오며 장마가 개고, 바람은 진정되고 물결이 잔잔해지므로[風定波平],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렀다. 정향가【丁香歌】마음에 맺혀 풀리지 않는 감정을 나타내는 노래. 이상은(李商隱) 대증시(代贈詩)에, “파초 잎은 피질 못하고 정향은 맺혀 있어, 봄바람을 함께 향해 제각기 수심이로세[芭蕉不展丁香結 同向春風各自愁]”하였음. 정현【鄭玄】동한(東漢) 시대의 대학자. 경전(經傳)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일대를 풍미했으며, 삼경(三經)을 비롯하여 의례(儀禮)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ㆍ상서대전(尙書大傳) 등 많은 경전의 주서(註書)를 남기고, 그 밖에도 천문(天文)ㆍ예설(禮說) 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음. 《後漢書 卷六十五》 정현곡【鄭玄谷】현곡은 정백창(鄭百昌)의 호이다. 정현침【鄭玄針】후한(後漢) 때 경학가(經學家)인 하휴(何休)가 일찍이 좌씨고황(左氏膏肓)을 저술한 데에 대하여 정현(鄭玄)이 침고황(針膏肓)을 지은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三十五》 정협【鄭俠】송 나라 복청(福淸)사람인데 신종(神宗) 때 사방을 떠돌며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고 화공을 시켜 유민도(流民圖)를 그려 신종에게 바치자, 신종이 그것을 보고 책궁조(責躬詔)를 내리고 방전(方田)ㆍ보갑(保甲)ㆍ청묘(靑苗)등 신법(新法)을 혁파하였다. 정협유민도【鄭俠流民圖】정협은 송 나라 복청(福淸) 사람으로 자는 개부(介夫)인데, 그가 목격한 유랑민의 처절한 상황을 화공을 시켜 그림으로 그려 신종(神宗)에게 올리자, 신종은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조서를 내리고 아울러 왕안석(王安石)에 의해 실시된 방전(方田)ㆍ보갑(保甲)ㆍ청묘(靑苗)등 신법(新法)을 혁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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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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