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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紫雲】자운은 당(唐)의 사도(司徒) 이원(李愿)의 집에 있던 명기(名妓). 두목(杜牧)은 어사(御史)가 되어 낙양 분사(洛陽分司)로 있었는데, 이원의 연회석에 명사(名士)로 초대되어 “자운이란 명기가 있단 말 들었는데 누구인가?" 하고 물었다. 이원이 가르쳐주자, 그는 한참 동안 응시하고는 “과연 아름다우니 나에게 빌려달라.” 하였다.《唐詩 紀事 杜牧》 자운【子雲】자운은 한(漢) 나라 때의 문장가 양웅(揚雄)의 자인데, 양웅은 자식이 없어 그가 죽었을 적에 제자인 후파(侯芭)가 장사를 치르고 삼년상(三年喪)을 치렀다. 태현(太玄)ㆍ법언(法言)ㆍ방언(方言) 등의 저서(著書)가 있다. 《漢書 卷八十七 揚雄傳》 자운식자종하보【子雲識字終何補】한(漢)나라 양자운(揚子雲)이 학문이 깊고 기이한 글자[奇字]를 잘 알았는데도 벼슬은 궁정(宮庭)에서 창을 잡는[執戟] 낭관(郞官)에 지나지 못하였다. 자운적막【子雲寂寞】한(漢) 나라 양자운(揚子雲 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며 숨어살면서, “적막(寂寞)으로 덕을 지킨다.”고 자칭하더니, 뒤에 역적(逆賊) 왕망(王莽)에게 벼슬하다가 죄에 걸려 체포를 당하게 되자 높은 누각에서 몸을 던져 떨어졌다. 사람들이, “적막(寂寞)은 투각(投閣)이로다.” 하였다. 자운정【子雲亭】한(漢) 나라 때 서촉에 있었던 양웅(揚雄)의 독서(讀書)하던 곳을 이름.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에 “남양 제갈공명의 초려요, 서촉 양자운의 정자로다.[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하였다. 자운조【子雲嘲】자운은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자. 한 손[客]이 양웅더러 너무 청백만을 고수하다가는 녹위(祿位)를 얻을 수 없다고 조롱하므로 양웅이 글을 지어 이를 해명하였다. 자웅【雌雄】雄劍과 雌劍. ‘鴛鴦劍’이라고도 함. 자웅검【雌雄劍】춘추 시대 오(吳) 나라 사람 간장(干將)이 암수의 명검 두 자루를 만든 뒤, 웅검(雄劍)은 간장이라 하고 자검(雌劍)은 자신의 아내 이름을 붙여 막야(莫邪)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자웅리【雌雄離】짝들이란 옛적의 명검(名劍)으로 전해져 오는 양(陽)의 검 간장(干將)과 음(陰)의 검 막야(莫邪)를 말하는데, 도장(刀匠)이 3년만에 칼을 완성한 뒤 막야만 왕에게 바치고 간장은 남산(南山)에 파묻었다고 한다. 《搜神記 卷11》 자웅미변【雌雄未辨】시경(詩經)에, “까마귀의 암컷 수컷을 뉘 알랴.” 한 구절이 있다. 자원【紫垣】자원은 자미원(紫微垣)의 약칭으로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자원앙【紫鴛鴦】자원앙은 일종의 새 이름. 이백(李白)의 시에, “칠십의 자원앙이, 쌍쌍이서 그윽한 정자 좋아하네[七十紫鴛鴦 雙雙戲亭幽]”라고 하였는데, 한 번 지기(知己)가 되면 변하지 않아야 함을 뜻한다. 자원용무휼【子元用武譎】자원(子元)은 한(漢) 나라 주박(朱博)의 자(字)이다. 본래 무관 출신으로 자사(刺史)가 되어 관내를 순시할 때, 이민(吏民) 수백 인이 가득 몰려와 사정을 호소하였는데, 종사(從事)가 주박을 시험해 볼 목적으로 일을 처리해 주고 떠날 것을 청하자, 주박이 현령과 속리(屬吏) 등 해당되는 관원을 찾아가 처리토록 지시하여 모두 해산시킨 뒤, 간교한 꾀를 부린 종사를 주살(誅殺)함으로써 위엄있게 지방을 다스렸던 고사이다. 《漢書 卷83》 자위【慈闈】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음. 자위【紫闈】임금의 궁전(宮殿). 자위【紫緯】임금의 궁전을 말함. 자위소【慈闈笑】한(漢) 나라 때 준불의(雋不疑)가 경조윤(京兆尹)이 되어 매양 죄수들의 정상을 살피고 돌아오면 그때마다 그의 모친이 불의에게 “평번(平反)을 하여 몇 사람이나 살렸느냐?”고 묻는데, 불의가 평번을 많이 시행했다고 대답하면 그의 모친이 기뻐하여 웃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漢書 卷七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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