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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공【狄公】적공은 당(唐) 나라 적인걸(狄仁傑)임. 그의 부모가 하양(河陽)에 살고 있었는데, 태항산(太行山)에 올라 흰구름 한 덩이가 떠가는 것을 보고 옆사람에게 “우리 부모가 저 아래에 살고 계신다.” 하고 한동안 슬프게 바라보다가 그 구름이 가버린 뒤에 자리를 떠났다고 함. 《新唐書 卷一百一十五 狄仁傑傳》 적공【狄公】적공은 송(宋)의 적청(狄靑)을 말한 것으로 소순(蘇洵)의 상한추필서(上韓樞密書)에, “지난번 적공(狄公)이 추부(樞府)에 있을 때는 그가 너그럽고 온후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사졸(士卒)들과도 가까이 지내 그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고 하였는데…….” 하였음. 적공비【翟公扉】적공(翟公)은 서한(西漢) 때 사람으로, 정위(廷尉) 벼슬을 할 때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파직당하자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문간이 한산하기만 하였는데, 다시 복직됨에 빈객들이 찾아가려 하자, 그 문에 큰 글씨로 써서 내걸기를[大署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이라 하고 일체 거절하였다 한다. 《史記 汲鄭列傳 論》 적공빈부【翟公貧富】적공은 춘추 시대(春秋時代) 사람. 그가 귀할 때는 친구가 많았으나 천할 때는 친구가 없었다 한다. 《史記 汲鄭傳》 적공지문가라작【翟公之門可羅雀】한(漢)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에, 손님을 좋아하여 손님들이 문에 가득하더니, 정위에서 파면되고 나자 오는 손님이 없어서 문전에 참새만이 모여들어 새그물을 칠 만하였다. 적공파관빈객절【翟公罷官賓客絶】서한(西漢) 때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적에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더니,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대문 밖이 한산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汲鄭列傳論》 적공한구객【翟公恨舊客】한(漢) 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 빈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는데, 그 관직을 그만두자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정위의 임명을 받자 빈객들이 또 몰려들었는데, 이에 적공이 분개하여 그 집 대문 앞에 “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이라고 써서 붙였다 한다. 《史記 汲鄭傳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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