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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餞罷】전별을 마치다. 전포지라【轉胞之懶】문선(文選) 혜강여산거원절교서(嵇康與山巨源絶交書)에 “언제나 소변이 마려워도 참고 있다가 결국 참을 수 없게 되어서야 일어나 소변을 본다.” 한 데서 온 말로, 게으름을 피운다는 뜻이다. 전품【田品】사냥해서 수확한 것들을 등급별로 나누어 적절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손괘(巽卦) 육사효(六四爻)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니, 사냥해서 잡은 것들을 세 등급으로 나눔이로다.[悔亡 田穫三品]”라고 하였는데, 삼품(三品)에 대해서 주자(朱子)는 제사 음식용, 빈객 대접용, 주방 비축용이라고 해설하였다. 전해【塡海】옛날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東海)에 빠져 죽어 그 원혼이 정위(精衛)라는 새가 되었는데, 늘 서산(西山)의 목석(木石)을 물어다가 바다에 넣어 동해를 몽땅 메우려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太平御覽 羽族部 精衛》 전해석난편【塡海石難鞭】진 시황(秦始皇)이 해 뜨는 곳을 보기 위해 석교(石橋)를 만들 적에, 신인(神人)이 돌을 채찍질하여 몰아서 바다로 내려보냈는데, 돌이 빨리 가지 않을 경우 신인이 마구 채찍질을 하면 돌들이 모두 피를 흘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서, 여기서는 곧 공을 이루기 어려움을 뜻한 말이다. 전형【錢兄】진(晋) 나라 노포(魯褒)가 세상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을 비양하여 전신론(錢神論)을 지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돈을 형님이라 부른다.’는 구절이 있다. 전혜【荃蕙】전혜는 향초(香草)의 이름. 전혜화모【荃蕙化茅】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난초와 지초는 변하여 향기를 잃고, 전초와 혜초는 바뀌어 띠풀이 되었네. 어찌하여 옛날엔 향기롭던 이 풀들이 지금은 어찌 이처럼 쑥덤불이 되었는가.[蘭芷變而不芳兮 荃蕙化而爲茅 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라는 표현이 있다. 전호후랑【前虎後狼】전호후랑이란 ‘전문거호 후문진랑(前門据虎 後門進狼)’의 줄임말로,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의 이리가 나온다는 말로, 하나의 재난을 피하자 또 다른 재난이 나타난다는 뜻의 고사성어. 전홍【纏紅】부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혼을 주관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붉은 밧줄을 가지고 다니면서 부부의 인연이 닿는 사람들의 발목을 꽁꽁 묶어 놓는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續玄怪錄 卷4》 전화위복【轉禍爲福】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 화를 바꾸어 복으로 한다. 궂은 일을 당하였을 때 그것을 잘 처리하여 좋은 일이 되게 하는 것. 전환【剪鬟】전환은 머리털을 자른다는 뜻으로, 진(晉) 나라 때 도간(陶侃)이 현리(縣吏)로 있을 때 그의 친구 범규(范逵)가 찾아왔는데, 본디 집이 가난한데다가 갑자기라서 대접할 것이 없으므로, 그의 어머니가 머리털을 잘라 팔아서 술과 안주를 사다 주어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晉書 卷六十六 陶侃傳》 전횡【田橫】진(秦) 나라 사람으로 본래 제(齊)의 왕족이었다. 뒤에 한신(韓信)이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파멸(破滅)시키자, 전횡은 자립하여 왕이 되고 항우(項羽)를 섬겼었는데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를 멸망시키자 전횡은 그의 무리 5백 명을 데리고 해도(海島)로 도망하였다. 고조는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를 “전횡아 오라. 높은 자에게는 왕을, 낮은 자에게는 후(侯)를 주겠으며, 만일 오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어 전멸시키겠다.” 하였다. 전횡은 두 객(客)과 함께 낙양(洛陽) 30리 밖에까지 와서 자살하니, 그의 객도 따라 죽었으며 해도에 있던 5백 명도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 자살하였다. 이 때문에 그들을 슬퍼하여 이 섬을 오호도(嗚呼島)라 불렀다 한다. 전횡도【田橫島】한 고조(漢高祖) 때 제왕(齊王) 전횡(田橫)이 부하 5백 명을 거느리고 섬으로 들어간 후에 한 고조가 불렀으나 신하 되기를 거부하고 자결하자, 부하 5백 명도 모두 따라 죽었던 바, 한 고조가 섬 이름을 전횡도라 했다 함. 전횡사【田橫士】전횡을 따라 생사를 함께 한 의사들. 전횡은 전국시대 제(齊) 나라 왕의 후예로 진말(秦末)에 제 나라 재상으로 있던 중, 한신(韓信)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제 나라 왕으로 자칭하고서 자기를 따르는 무리 5백 인을 거느리고 섬으로 도망갔다. 유방(劉邦)이 천자가 되어 사자를 보내 항복할 것을 회유하자, 전횡은 서울 낙양(洛陽)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漢) 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이 부끄러워 자살하였는데, 섬 안에 남아 있던 그의 무리들이 그 소식을 듣고 역시 모두 자살하였다. 그들이 살았던 섬이 우리 나라 서해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전해 온다. 《史記 卷九十四 田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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