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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문【鄭監門】정감문(鄭監門)은 북송(北宋) 시대 감안상문(監安上門)으로 있었던 정협(鄭俠)을 가리킴. 정협은 평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백성들에게 큰 병폐가 됨을 극언했었는데, 뒤에 오랫동안 가뭄이 듦으로써 유민(流民)들이 살 곳을 잃어 도로에 가득하게 되자, 이때에 백성의 참상(慘狀)을 자세히 그려서 유민도(流民圖)를 신종(神宗)께 올리니, 신종이 이 그림을 보고는 당장 구언(求言)의 조서를 내림과 동시에 신법을 혁파함으로써 며칠 뒤에 바로 큰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宋史 卷三百二十一》 정강【靖康】정강은 송 나라 흠종(欽宗)의 연호인데, 정강 2년에 금군(金軍)이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이 함락되고 상황(上皇)인 휘종(徽宗)과 흠종이 모두 사로잡힌 일이 있었다. 정강지변【靖康之變】북송(北宋) 정강 2년에 금군(金軍)에 의해 송도(宋都)의 변경(汴京)이 함락되었고 휘종(徽宗)ㆍ흠종(欽宗)이 잡혀간 사변을 말한다. 정강화【靖康禍】북송(北宋) 정강 2년에 금(金) 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을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철종(哲宗) 두 황제와 황족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으로, 이로써 북송이 망하였다. 정거【定居】집에 가서 좌정함을 뜻함. 시경(詩經) 소아(小雅) 채미(采薇)에 “어찌 감히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한 달에 세 번은 이겨야지[豈敢定居 一月三捷]”하였다. 정거궁【淨居宮】승가람마(僧伽覽摩)의 준말. 승원(僧園) 또는 정사(精舍)로 번역되는데, 사원(寺院)의 이칭(異稱)이다. 정건【鄭虔】당대(唐代)의 산수(山水) 명화가. 미관 말직의 신분으로 두보(杜甫)와 우정을 나눈 사이로서, 당 현종(唐玄宗)으로부터 시(詩), 서(書), 화(畫) 삼절(三絶)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정건삼절【鄭虔三絶】시(詩), 서(書), 화(畫)에 모두 뛰어난 자질을 구비했다는 말이다. 당(唐) 나라 정건(鄭虔)이 시를 써서 그림과 함께 현종(玄宗)에게 바치니, 현종이 그 끝에다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고 대서특필해 주었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202 鄭虔傳》 정경【正卿】아경(亞卿)과 상대되는 말로 육부(六部), 또는 육조(六曹)의 정식 장관이나 이와 동등한 관직을 가리킨다. 정경【井陘】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태항산(太行山)의 지맥(支脈)인데, 사면은 높고 중앙은 낮아 마치 우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곧 험난한 산길을 뜻한다. 정계【停啓】아뢰는 것을 멈춤. 특히 사헌부(司憲府)ㆍ사간원(司諫院)ㆍ홍문관(弘文館) 등이 전부터 논계(論啓)하여 오던 일을 정지하는 것. 전에 이미 아뢴 것을 ‘전계(前啓)’라 하고 새로 아뢴 것을 ‘신계(新啓)’라 하며, ‘전계(前啓)’를 계속하여 다시 아뢰는 것을 ‘연계(連啓)’라 하고 전계를 전부이건 일부이건 멈추는 것을 ‘정계(停啓)’라 한다. 정계【㫌棨】정기(旌旗)와 계극을 말함. 두보가 적명부(狄明府)에 부친 시 중에, “汝曹又宜裂土食 身使門戶多旌棨”라고 보이는데, 그 주에는, “杜田引唐制節度使就第賜旌節 三品以上門立戟”이라고 하였음. 정계【丁鷄】진읍(鎭邑)에서 일상의 영위(營爲)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적(籍)에 실려 있는 장정의 숫자를 헤아려 물품을 징수하는 세목(稅目)의 일종. 닭을 징수하는 것을 정계(丁鷄), 물고기를 징수하는 것을 정어(丁魚), 술을 징수하는 것을 정주(丁酒)라 하였다. 정계【淨界】청정한 세계. 곧 초야의 은거생활을 뜻한다. 정계금지【淨界金地】불사(佛寺)가 자리한 정결한 지역에는 대지가 온통 황금으로 되어 있다는 설화로, 송고승전(宋高僧傳) 감통(感通) 당오대산죽림사법조전(唐五台山竹林寺法照傳)에 “現其五台諸寺 盡是金地”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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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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