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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고【題糕】당(唐) 나라 때 시인 유몽득(劉夢得)이 일찍이 중구일(重九日)에 시를 지으면서 고(糕) 자를 쓰려고 하였으나, 오경(五經) 가운데 이 글자가 없기 때문에 끝내 쓰지 않고 말았는데, 이에 대하여 송(宋) 나라 때 송기(宋祁)가 지은 식찬유영시(食饌有詠詩)에 “유랑이 감히 고 자를 쓰지 못하였으니, 한 세상의 시호란 말을 헛되이 저버렸구나[劉郞不敢題糕字 虛負詩中一世豪]” 한 데서 온 말이다. 제과【制科】경문(經文)으로 과제(科題)를 내어 선거하는 과거로서, 처음에는 천자가 친히 참관하였는데, 후에 와서 모든 유사(有司)들에게 위임하게 되었음. 제교【帝郊】천제의 교외. 하늘가. 제교객【題橋客】다리에 쓴 손님은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성도기(成都紀)에 “사마상여가 장안(長安)을 가는 길에 고향 촉군(蜀郡)을 지나다가 승선교(升仙橋) 기둥에 ‘사마의 수레를 타지 못하면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駟馬車 不復過此橋]’ 하는 글을 써 붙였다.” 하였다. 제구【제舊】후추를 빻아 가루로 만드는 확. 제궐승청리【帝闕承聽履】제궐은 명(明) 황제의 궁궐을 말하는데, 황제가 우대하는 신하에게는 신을 신고 올라옴을 허락하였다. 제금【題襟】제금은 당(唐) 나라 때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 등이 서로 창화(唱和)한 시(詩)를 수집하여 만든 한상제금집(漢上題襟集)이라는 서명(書名)의 준말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제금【製錦】좌전(左傳) 양공(襄公) 31년 조(條)에 “자피(子皮)가 윤하(尹何)를 시켜 읍(邑)을 다스리려 하니 자산(子産)이 ‘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其爲美錦 不亦多乎’라고 했다.” 하였음. 제금【製錦】현재(賢才)가 수령으로 나가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정(鄭) 나라 대부 자피(子皮)가 윤하(尹何)에게 대읍(大邑)을 맡기려 하자, 자산(子産)이 이에 반대하여 말하기를 “그대에게 아름다운 비단이 있을 경우, 옷 짓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옷을 지으라고 맡기지 않을 것이다. 큰 고을은 많은 사람이 몸을 의지하는 곳인데, 배우는 사람에게 시험삼아 다스리게 한단 말인가.” 한 데서 온 말이다. 《左傳 襄公三十一年》 제금【題襟】흉금을 털어놓고 시를 짓는 것을 말한 것으로, 당(唐) 나라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가 서로 시를 주고받은 제금집(題襟集)이 있다. 《唐書 藝文志》 제금록【題衿錄】당(唐) 나라 때에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 등이 서로 창화(唱和)한 시들을 수록해 놓은 한상제급집(漢上題衿集)을 가리킨 듯하다. 제금유자【題襟遊子】제금은 시를 지어 흉금을 말하는 것으로 당(唐)의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를 가리킨다. 제기【齊己】당(唐)의 승려(僧侶). 그는 승려이면서 서한(書翰)에 마음을 쓰고, 또 시 읊기를 좋아하여 강릉(江陵) 용흥사(龍興寺)에 있으면서 정곡(鄭谷)과 많이 창수(唱酬)를 하였으며 차[茶]에 대하여도 일가견이 있었음. 《學林新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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