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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조두【俎豆】노자(老子)의 제자인 경상초(庚桑楚)가 노자에게서 도를 배우고 외루(畏壘)라는 곳에 가서 사는데, 그가 있은 지 3년에 외루가 크게 풍년이 들자, 외루 사람들이 그를 성인(聖人)에 가깝다고 여겨 임금으로 받들고자 하였다. 그러자 그 사실을 들은 경상초가 남쪽을 향해 앉아서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지금 외루 사람들이 나를 현인으로 높이어 임금으로 삼고자 하니, 이는 곧 내가 바로 표적(標的)의 인간이 된 것이다.”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莊子 庚桑楚》

조두【刁斗】놋쇠로 만든 한 말 들이 솥 같은 기구인데, 군중(軍中)에서 낮에는 여기에 음식을 만들고, 밤에는 이것을 두드려 경계(警誡)하는 데에 썼다고 한다. 일설(一說)에는 소령(小鈴)을 말한다.

조등【曹騰】조조(曹操)의 아버지인 숭(嵩)의 양부(養父). 원래 황문 종관(黃門從官)으로서 30여 년에 걸쳐 네 황제를 모시면서 대과 없이 지냈으므로 뒤에 공로로 비정후(費亭侯)에 봉해지고 그가 죽자 숭(嵩)이 양자로 그 뒤를 이었음. 《後漢書 宦者列傳》

조래【徂徠】산이름.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조래의 소나무[徂徠之松]" 하였다.

조래가식【徂徠嘉植】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조래산의 소나무와 신보산의 잣나무를, 자르고 쪼개고 재고 맞추어서, 커다란 재목 만드니 웅장한 궁궐이 완성되네.[徂徠之松 新甫之柏 是斷是度 是尋是尺 松桷有舃 路寢孔碩]”라는 말이 나온다.

조래상기【朝來爽氣】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에 진(晉) 나라의 왕휘지(王徽之)가 거기장군(車騎將軍) 환충(桓沖)의 기병 참군(騎兵參軍)으로 있을 적에 “서산의 아침 기운이 매우 삽상하다.[西山朝來 致有爽氣]”는 똑같은 말을 한 고사가 있다.

조량전【照凉殿】임금이 판각(版閣)에서 화산대(火山臺) 불놀이를 구경할 때 임시로 만들어 놓는 관망대(觀望臺)를 말한다.

조령모개【朝令暮改】아침에 내린 명령과 법령이 저녁에 다시 바뀜. 상부에서 내린 법령이 일관성 없이 자주 바뀜. 또는 법령을 자꾸 바꿔서 종잡을 수 없음을 비유. 자주 변함을 이름

조로연천헌【鳥路連天巘】새가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높고 험한 산봉우리를 말한다.

조롱괘벽사【雕籠掛碧紗】당(唐) 나라 때 왕파(王播)가 빈궁하여 양주(揚州)의 혜소사(惠昭寺)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 적에 중들이 그를 꺼리어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종을 치곤 하므로, 왕파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시 한 수를 써 놓고 그곳을 떠났는데, 뒤에 그 지방장관이 되어 다시 그 절을 찾아가 보니, 이전에 자신이 써 놓았던 시를 푸른 깁에 싸서 잘 보호하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조롱수【朝隴首】일명 백린가(白麟歌)라고도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원수(元狩) 원년 10월에 옹(雍) 땅에 행행하여 백린(白麟)을 얻고 이 노래를 지었다 한다

조룡【雕龍】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추석(騶奭)을 가리킨다. 추연(騶衍)은 하늘에 관해서 이야기를 잘 했고, 추석은 추연의 학문을 받아들여 마치 용 무늬처럼 꾸미기를 잘 했으므로, 당시에 “하늘을 얘기하는 추연이요, 용 무늬처럼 꾸미는 추석이로세.[談天衍 雕龍奭]”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史記 孟子荀卿列傳》

조룡【祖龍】조룡은 진시황(秦始皇)을 가리킨다. 조(祖)는 시(始)의 뜻이요 용은 임금의 상징이니, 시황(始皇)의 은어(隱語)이다. 사기(史記)에 “금년에 시황이 죽었다[今年祖龍死].” 하였다.

조룡【雕龍】조룡은 용의 문채를 아로새겼다는 말로 좋은 문장을 뜻한다. 후한서(後漢書) 최인전(崔駰傳)에 “대대로 조룡을 전해 왔다.” 했는데, 그 주(注)에 “추석(鄒奭)이 추연(鄒衍)의 글을 수식한 것이 용의 문채를 아로새긴 것 같다.”고 한 말이 있다.

조룡공【釣龍功】용을 낚았다는 것은 당 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 날 대왕포(大王浦)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바위나루에서 낙화암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 나라 병선(兵船)이 뒤엎어지는 변고가 일어났는데, 소정방은 이것을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의 짓이라 하여 강 가운데에 있는 바위에서 백마(白馬)를 미끼로 그 용을 잡았다 한다. 그리하여 강 이름이 백마강이 되고 용을 낚았다는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 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조룡문【祖龍門】조룡은 진시황(秦始皇)의 별칭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동해에 바위를 세워 두고 …… 이를 진 나라 동문으로 삼았다.[立石東海 …… 以爲秦東門]”는 기록이 있다.

조룡편석【祖龍鞭石】진시황(秦始皇) 동해(東海)에 해 뜨는 것을 보려고 돌로 바다에 다리를 놓으려 하자, 귀신이 돌을 채찍질하여 바다로 몰아 넣으니 돌에 피가 흘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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