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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조어산성【釣魚山城】송(宋) 나라 여개(余玠)가 사천성(四川省)의 조어산에 쌓은 성 이름이다. 몽고(蒙古)의 몽가한(蒙哥汗)이 군대를 총 동원하여 침공하였으나 몇 개월 동안이나 함락되지 않았다. 《讀史方輿紀要 四川 重慶府 合州》

조업【祖業】신하의 조상들이 임금의 선왕을 받들어 왕업을 창건한 것을 말한다.

조업【曹鄴】조업은 당(唐) 나라 사람. 자는 업지(鄴之). 태상박사(太常博士)와 양주 자사(洋州刺史)를 역임하였음. 저서에는 조사부집(曹祠部集)이 있음.

조여【曺蜍】진(晉) 나라 팽성(彭城) 사람 조무(曹茂)의 소자(小字)로 이지(李志)와 함께 변변찮은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글씨를 잘 썼지만 남들의 눈에 보일 만한 기개가 없어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하찮게 여겼다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는 천 년 전에 죽었어도 아직 늠름하게 생기(生氣)를 발하고 있는 반면, 조여(曹蜍)와 이지(李志) 같은 무리들은 비록 살아 있다 하더라도 구천(九泉) 아래에 있는 자들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그들과 같다면 결승(結繩)의 시대에 썼던 방법으로도 다스릴 수 있겠지만, 그들이 죽고 나면 뒤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이 여우나 오소리가 그 육신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릴 따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조여【曺呂】설정(雪江) 조문수(曺文秀)와 동강(東江) 여이징(呂爾徵)을 가리킨다.

조여이지【曹蜍李志】조여와 이지는 모두 진(晉) 나라 때 사람들로 글씨를 대단히 잘 썼으나 인품이 워낙 부족하여 글씨가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에서, 전하여 소인의 무리에 비유한 것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품조(品藻)에 의하면 “염파(廉頗)ㆍ인상여(藺相如)는 죽었지만 늠름하여 생기가 있고, 조여ㆍ이지는 살아 있어도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고, 황정견(黃庭堅)이 우군첩(右軍帖) 뒤에 쓴 글에는 “조여ㆍ이지 무리가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와 겨룰 만했지만 전하기에는 부족하다. 편지 한 장의 글씨라도 수백 세를 전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인품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였다.

조연【조然】일본 중의 이름인데, 송(宋)나라 때에 송나라에 와서 금문(今文)인 정현(鄭玄)의 주석한 효경(孝經)을 헌상하였다 한다.

조염매【調鹽梅】염매는 소금과 매실. 소금은 아주 짜고 매실은 아주 시기 때문에 두 맛을 잘 조화하여 알맞도록 한다는 뜻으로, 곧 신하가 임금을 잘 보좌하여 올바른 정사를 하게 한 데 비유한 말인데, 서경(書經) 열명 중(說命中)에 “만약 맛있는 국을 만들려거든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 한 데서 온 말이다.

조영인【趙永仁】본관은 횡성(橫城), 시호는 문경이다. 고려 의종(毅宗) 때 문과에 올라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조영청담혹자익【照影淸潭或自溺】꿩이 물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계속 춤을 추다가 탈진되어 빠져 죽는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異苑 3》

조예【鑿枘】조예는 사기(史記) 맹순전(孟荀傳)에, “持方枘欲內圓鑿 其能入乎”라 하였고, 장자(莊子) 재유편(在宥篇)에, “吾未知仁義之不爲桎梏鑿枘也”라 하였고, 색은(索隱)에, ‘方枘是筍也 圓鑿其空也 謂工人斲木以方筍而內之圓 空不可入也’라 하였다. 이상의 설로 미루어 보면, 서로 용납되지 않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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