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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周京】주 나라 서울. 주경【酒經】주경은 술 만드는 법과 예로부터 술을 잘 만든 사람 등을 기록한 책으로, 당 나라 때 왕적(王績)이 지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주경유【周景遊】경유는 주세붕(周世鵬)의 자이다. 주경투암【珠驚投暗】추양(鄒陽)의 글에, “야광주(夜光珠)를 밤에 갑작스레 남의 앞에 던지면 보배인 줄 모르고 놀래어 칼을 뺀다.” 하였다. 주계군【朱溪君】조선 태종(太宗)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증손으로 이름은 심원(深源)인데, 성품이 본디 엄정 충직하여 임사홍(任士洪)은 바로 그의 고모부(姑母夫)였으나 그의 간사함을 알고, 성종(成宗)을 면대하여, 사홍은 후일에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사람이니 중용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청하여 그를 귀양보내게 했었다. 이로 인하여 연산군 10년 임사홍이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킬 때 그의 모함을 받아 아들 형제와 함께 피살되었다. 주고【酒誥】주왕(紂王)에게 물이 들어 술을 좋아하는 은(殷) 나라 백성들을 경계시키기 위해 주(周) 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에게 명하여 반포토록 한 글로, 서경(書經) 속에 들어 있다. 주공몽【周公夢】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내가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한 지 오래구나.” 하였다. 주공몽견【周公夢見】공자는 주공처럼 도를 펴고자 하여 비록 시대는 근 천년의 차이가 있었지만, 꿈속에 보고 하여 반려(伴侶)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심하다 나의 쇠함이여, 내가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한 지 오래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하였다.《論語 述而》 공자가 장년기에는 주공의 도를 행하고자 하였으므로 가끔 꿈에 주공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늙어서 뜻도 꿈도 모두 없어졌음을 말한다. 주공삼태【周公三笞】자식들을 엄하게 교육시킨다는 뜻의 고사성어. 주공지부【周公之富】논어(論語)에, “계씨(季氏) 노국(魯國)의 권신(權臣)이 주공보다도 부(富)하다.”는 말이 있다. 주공질유술【周孔迭有術】주역(周易)의 상(象)은 주공(周公)이 짓고, 계사(繫辭)는 공자(孔子)가 지었다고 한다. 주공하재【周公遐哉】공자가, “전대(前代)의 주공(周公)을 사모하여 간간이 꿈에 보았으나, 만년(晩年)에는 내가 심히 노쇠하여서 다시는 꿈에 주공을 볼 수 없구나.” 하였다. 주관【周官】주례(周禮)의 별칭 주관육익【周官六翼】고려(高麗) 말년에 김구용(金九容)이 지은 글의 이름이다. 전리(典理)ㆍ군부(軍簿)ㆍ판도(版圖)ㆍ전법(典法)ㆍ의례(儀禮)ㆍ전공(典工)의 육전(六典)을 기술하였다. 《高麗史》 주괴리【朱槐里】주운이 괴리 영(槐里令)을 지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교년【朱喬年】주교년은 주자(朱子)의 아버지. 이름은 송(松), 교년은 그의 자임. 그는 사훈이부랑(司勳吏部郞)을 지냈음. 학자들이 위재 선생(韋齋先生)이라 칭했음. 저서에는 위재집(韋齋集)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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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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