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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방제결【衆芳鶗鴂】온갖 꽃이 시드는 처량한 시절이라는 말이다. 제결(鶗鴂)은 두견새로 이 새가 울면 꽃이 시든다고 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恐鶗鴂之先鳴兮 使百草爲之不芳”이라 하였고, 백거이(白居易)와 소식(蘇軾)의 시에도 각각 “殘芳悲鶗鴂”과 “只恐先春鶗鴂鳴”이라는 표현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16 東南行 一百韻ㆍ蘇東坡詩集 卷8 和致仕張郞中春晝》 중봉【重峯】중봉은 조헌(趙憲)의 호이다. 중부【仲孚】고려 때의 문신인 정포(鄭誧)의 자임. 정포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로 있으면서 악정(惡政)을 상소했다가 울산(蔚山)에 유배된 적이 있었고, 그는 특히 시문(詩文)ㆍ서예(書藝)에 모두 뛰어났었다. 중부【重夫】중부는 이후여(李厚輿)의 자(字)이다. 중부잠모교탈진【仲父潛謀巧奪秦】진(秦) 나라 여불위(呂不韋)가 저의 아이를 밴 첩을 진왕(秦王)에게 바쳐서 낳은 아들이 곧 진시황(秦始皇)이란 말이 있다. 진 나라에서 여불위를 높여서 중보(仲父)라 하였다. 중산【中山】술 이름임. 수신기(搜神記)에 “적희(狄希)는 중산(中山) 사람인데 천일주(千日酒)를 만들어 그것을 마시면 천 일을 취한다.” 하였음. 중산【仲山】중산은 한 고조(漢高祖)의 형 중(仲)이 살았던 곳임. 중산【中散】진(晉)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을 가리킨다. 한때 위(魏) 나라에 벼슬하여 중산대부(中散大夫)가 되었으나 그만둔 뒤로는 죽림 속에서 청담(淸談)을 즐기며 벼슬하지 않았다. 그는 대장장이의 풀무질을 좋아하여 벗 향수(向秀)와 더불어 마주앉아 풀무질을 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중산【中山】한 잔만 마시면 1천일 동안을 취한다는 중산에서 나는 술을 가리킨 말이다. 박물지(博物志)에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취해서 죽은 듯이 쓰러지자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만 알고 장례를 치러버렸는데, 3년 만에 그 술집에서 그 집을 찾아가 무덤을 파보니, 그제야 술이 깨었다.” 하였다. 중산방만락양서【中山謗滿樂羊書】전국 시대 위(魏)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을 쳐서 3년 만에 그를 함락시키고 돌아와 문후(文侯)에게 보고하자, 문후가 상자에 가득찬 방서(謗書)를 보이니, 악양이 재배(再拜)하면서 “중산을 격파한 것은 신(臣)의 공이 아니라 임금의 공입니다.” 하며, 그 많은 중상의 투서를 받고도 임금이 끝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다. 《史記 卷七十一 甘茂傳》 중산의갈부【中山衣褐夫】중산은 지명으로 품질 좋은 붓을 생산하던 곳이고, 의갈부란 털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토끼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중산참방【中山讒謗】터무니없이 날조하여 참소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 시대에 위(魏)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정벌하러 나간 지 3년 만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니, 위 문후(魏文侯)가 그동안 신하들이 그에 대해서 참소한 글 한 상자를 꺼내 보여 준 고사가 있다. 《呂氏春秋 樂成》 중상모략【中傷謀略】상대방의 속이 상하도록 하는 갖은 꾀와 책략. 권모술수가 상대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타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중상모략은 주로 상대의 명예를 손상시켜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히고자 하는 것이다 중상지기【仲翔知己】중상은 삼국 시대 오(吳) 나라 우번(虞翻)의 자(字)인데, 그가 강직하게 감히 바른 소리를 하다가 조정에서 쫓겨난 뒤에 “나의 골상(骨相)이 원래 아첨을 떨지 못하게 되어 있다.[骨體不媚]”고 한탄하면서,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使天下一人知己者 足以不恨]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57 吳書 虞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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