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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황감경절물【中曆黃柑驚節物】중력(中曆)은 궁중(宮中)의 역서(曆書)이고, 황감(黃柑 익어서 누렇게 된 귤)은 동짓달의 절물(節物)인데, 예로부터 동짓날에는 궁중에서 근신(近臣)들에게 이 두 가지 물건을 하사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중련【仲連】중련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을 말한다. 당시 진(秦)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제후(諸侯)들이 진을 천자(天子) 나라로 받들려 하므로, 반대하면서 “진 나라를 천자 나라로 섬기느니 동해(東海)에 빠져 죽겠다.” 하였다. 《史記 卷八十三 魯仲連傳》 중련지도해【仲連之蹈海】전국 시대에 진(秦)이 조(趙)를 호되게 공격하고 있을 때 위(魏)의 신원연(新垣衍)이 조 나라로 가서, 진 나라가 군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진 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높여주도록 하자고 제의하자, 당시 조 나라에 와 있던 제(齊) 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진 나라가 만약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한다면 이 중련은 동해로 달려가 빠져죽고 말 것이다.” 하였음. 《史記 卷83》 중령군【中領軍】관직명으로 한(漢)나라 말에 만들어졌다. 위진(魏晉)에서 남북조(南北朝)에 이르기까지, 측근 대신들이 그 직위에 임명되었다. 중호군(中護軍)과 함께 군대를 통솔하는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중루점괴후【中壘占乖候】중루는 한대(漢代)에 집금오(執金吾)의 속관(屬官)인 관명(官名)으로, 유 중루는 곧 중루교위(中壘校尉)를 지낸 유향(劉向)을 가리키며 괴후(乖候)는 곧 괴이(乖異)한 징후라는 뜻으로 유향이 일찍이 상고(上古) 이래 역대에 걸쳐 부서(符瑞)와 재이(災異)에 대한 기록을 모아서 그 행사(行事)를 추적(追跡)하여 점험(占驗)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이다. 《漢書 卷三十六》 중류격즙【中流擊楫】진(晉) 조적(狙逖)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중류격즙【中流擊楫】진서(晉書) 조적전(祖逖傳)에 “예주 자사(豫州刺史) 조적(祖逖)은 유사(流徙) 부곡(部曲) 백여 가호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돛대를 치며 맹세하기를 ‘내가 중원(中原)을 깨끗이 소탕하지 못한다면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 하여 기상이 장렬하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하였다. 중류공석위산하【中流空惜魏山河】전국 시대에 위 무후(魏武侯)가 하수(河水)에서 배를 타고 내려 가다가 중류(中流)에서 좌우의 산천을 돌아보고, “산천이 장(壯)하구나 이것은 위국(魏國)의 보배로다.” 하니, 오기(吳起)가 대답하기를, “국가가 오래 가는 것은 덕(德)에 있는 것이요, 산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중맹유상【衆盲喩象】코끼리를 불성(佛性)에 비유하고 소경을 무명(無明)의 중생에 비유하여 중맹상(衆盲象)의 지체(肢體)를 더듬어서 여러 가지를 풀이해주는 것을 말한 것임. 중묘【衆妙】오만 가지 묘리(妙理)로서 즉 도(道)를 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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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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