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중달【仲達】삼국 시대 위(魏) 나라의 장수 사마의(司馬懿)의 자(字). 제갈공명의 적수로 지략이 뛰어났다. 중당【中唐】당(唐) 나라의 시체(詩體)를 초당ㆍ중당ㆍ만당(晩唐)으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대력(大曆) 때부터 태화(太和) 때까지를 일컬으며, 여기에 해당한 시인은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 등이다. 중대【中臺】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다. 중동【重瞳】순(舜) 임금의 눈에 동자가 둘씩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눈을 중동이라 한 것이다. 중동【仲冬】중동은 곧 11월이다. 중동【重瞳】항우(項羽)의 눈에 동자(瞳子)가 둘씩이었다 한다. 중동갱유중양재【仲冬更有重陽在】11월 9일을 말함. 중랑【中郞】문인 학사를 일컫는 말이다. 한(漢)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채옹(蔡邕)이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던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채옹의 딸 채담(蔡琰)이 그 아버지를 이어 글을 잘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중랑녀【中郞女】아들을 보지 못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난 딸 하나만 남겼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채옹(蔡邕)의 딸 문희(文姬)가 선친으로부터 4천여 권의 책을 물려받고 상란(喪亂)의 시대에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서적을 모두 망실했으나 그래도 40여 편을 암송하여 다시 복구시켰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後漢書 列女傳》 중랑아대【中郞阿大】숙부(叔父)를 가리킨 말. 진(晉) 나라 때 사안(謝安)의 형인 혁(奕)의 딸 도운(道韞)이 왕응지(王凝之)에게 시집을 간 처음 친정에 와서 매우 불쾌하게 여기자, 사안이 이르기를 “왕랑(王郞 왕응지를 가리킴)은 일소(逸少 王羲之의 자)의 아들인데 네가 무엇을 한하느냐?”하니, 사도운이 대답하기를 “우리 일문(一門)의 숙부로는 아대(阿大)와 중랑(中郞)이 있고, 뭇 종형제들로는 또 봉(封)ㆍ호(胡)ㆍ갈(羯)ㆍ말(末)이 있는데, 뜻밖에도 천지 사이에 왕랑 같은 자가 있었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아대는 곧 사안을 가리킨 말이고, 중랑은 곧 사안의 아우로서 역시 문재(文才)가 뛰어나서 간문제(簡文帝)로부터 특별히 종사중랑(從事中郞)에 발탁되었던 사만(謝萬)을 가리킨 말이다. 《晋書 卷九十六》 중랑원【中郞願】한(漢) 나라 때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된 채옹(蔡邕)처럼 내직(內職)에서 학사(學士)로 계속 근무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中郞石經後 八分蓋憔悴”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2 送顧八分文學適洪吉州》 중랑지절【中郞持節】깃대 지닌 중랑이란 한(漢)나라 때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가 무제(武帝) 천한(天漢) 원년에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나갔다가 선우(單于)에게 강제로 붙잡혀 19년 동안 양치기 노릇을 하면서도 사신의 징표로 가지고 간 깃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존함으로써 한 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五十四 蘇武傳》 중랑초미금【中郞焦尾琴】중랑은 후한(後漢) 때 중랑 벼슬을 지낸 채옹(蔡邕)을 이름. 초미금은 곧 거문고를 가리킨 말로, 채옹이 일찍이 이웃 집에서 밥을 짓느라고 때는 오동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고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 줄을 알고 그 타다 남은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중랑해모금【中郞解摸金】중랑은 곧 발구중랑(發邱中郞)인데, 조조(曹操)의 명을 받고 가는 곳마다 고분(古墳)을 파헤쳐 금은보화(金銀寶貨)를 취하였다 한다. 중랭【中冷】양자강(揚子江) 중랭천(中冷泉)의 물이 점다(點茶)를 하는 데 있어 천하의 으뜸이라는 고사가 있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