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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상우두고【紫氣夜上牛斗高】진 무제(晉武帝) 때 천상(天象)을 잘 관찰하던 뇌환(雷煥) 이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자기(紫氣)가 있음을 보고 이를 보검(寶劍)의 정기가 하늘에 뻗친 것이라 하고는 그 보검이 묻혀있는 풍성현(豊城縣)에 가서 용천(龍泉)ㆍ태아(太阿) 두 보검을 찾아낸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三十六》 자기출서관【紫氣出西關】자기는 자줏빛의 서기(瑞氣)를 말함. 춘추 시대 노자(老子)가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려고 할 적에, 앞서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천기(天氣)를 관찰한 결과 함곡관 머리에 자기가 떠있음을 보고 성인이 그곳을 지나갈 것을 예측했는데, 과연 노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자기편면【慈屺便面】자기는 강위(姜瑋)의 호인데 일호는 추금(秋琴)임. 완당의 제자이고 시에 능하였음. 편면은 부채를 말함. 자기회【子綦灰】장자(莊子)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의자에 앉아 명상하고 있는데, 안성 자유(顔成子游)가 모시고 있다가 말하기를, “어떻습니까. 몸을 진실로 고목(枯木)같이 하고 마음을 진실로 식은 재같이 할 수 있습니까.” 하였다. 자니【紫泥】고대에 진흙으로 서신(書信)을 봉하고 인장을 찍었는데 황제의 조서(詔書)는 무도(武都)의 붉은 진흙으로 봉했던 데서 온 말이다. 자당【慈堂】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일컬음. 자도【子都】뛰어난 미남자(美男者)를 이르는데, 시경(詩經) 정풍(鄭風) 산유부소(山有扶蘇)에 “자도는 보이지 않고 미친 놈만 보이는구나[不見子都 乃見狂且]”하였다.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콩을 삶는 데 콩깍지로 불을 때다. 골육인 형제가 서로 다투어 괴롭히고 죽이려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자라낭【紫羅囊】귀족 자제(貴族子弟)들이 지니는 사치품으로서, 즉 자주색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이르는데, 진(晉) 나라 때 사현(謝玄)이 어려서 자라낭을 좋아하여 차고 다니므로, 그의 숙부(叔父) 사안(謝安)이 그를 걱정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짐짓 장난으로 내기를 하여 그것을 따내서 즉시 불태워 버렸다 한다. 자란생【紫鸞笙】신선이 부는 피리인데, 진자앙(陳子昻)과 이백(李白)의 시(詩)에 있다. 자로공【子路拱】공경하는 예를 올리겠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에 처졌는데, 지팡이를 짚고 대바구니를 멘 장인(丈人)을 만났다. 자로가 ‘노인께서는 우리 부자(夫子)를 보셨습니까?’ 하고 묻자, 장인이 말하기를, ‘사지(四肢)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오곡(五穀)을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누구를 부자라고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었다. 이에 자로가 공수한 채 서 있었다.” 하였다. 자로부미【子路負米】백리나 떨어진 먼 곳으로 쌀을 진다는 말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효성이 지극하여 갖은 고생을 하며 부모의 봉양을 잘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자료【自聊】스스로를 생각하다. 자신을 돌보다. 자릉【子陵】동한(東漢) 때 사람 엄광(嚴光). 자릉은 그의 자임. 소년 시절 광무(光武)와 함께 자라며 공부했었는데, 그후 광무가 황제의 위에 오르자 변성명을 하고 숨어 지내다가 광무의 끈질긴 물색 끝에 발각되어 광무로부터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받았으나 끝내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 갈고 고기 낚다가 일생을 마쳤음. 《後漢書 卷113》 자릉대【子陵臺】한(漢)나라 엄자릉(嚴子陵)은 광무제(光武帝)의 고인(故人)으로 벼슬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칠리탄(七里灘)에 돌아가 낚시질을 하였다. 지금도 그의 조대(釣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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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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